새 천년을 맞은 한국의 교통문화는 과연 몇점일까.
교통행정을 담당하고 교통사고 통계를 공식 집계하는 건설교통부와 경찰은 교통사고 사망자가 96년 이후 계속 줄어들었다며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보험회사 등은 사고 건수와 인명 피해율이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낙제점을 준다.
왜 이같은 차이가 나는 걸까.또 어느 쪽이 보다 사실에 가까울까.
통계청이 발간하는 ‘통계연보’를 보면 교통사고 사망자가 건교부나 경찰이 집계해 발표하는 것보다 항상 30% 이상 많다.
이같은 차이는 통계를 잡는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건교부와 경찰은 교통사고가 발생한 뒤 72시간 이내에 숨진 사람만을 교통사고 사망자로 기록하고 있다.반면 통계청은 사고 발생 1년 뒤 면접조사를 근거로 교통사고 사망자를 파악한다.
이렇게 본다면 건교부나 경찰보다는 통계청의 통계가 보다 교통사고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교통문화의 정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같은 ‘숫자 놀음’보다 교통사고의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하고 도망치는 ‘뺑소니 사고’를 보자. 95년 1만1585건이던 것이 98년에는 2만3410건으로 배 이상 늘었다. 음주운전 사고는 같은 기간에 1만5492건에서 2만5269건으로 63% 증가했다.
교통법규 위반도 심각하다.98년 한해동안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아 경찰의 단속에 걸린 사람이 전체 인구의 30% 가량인 1369만8180명에 달한다.어린이와 노인을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모든 국민이 한번씩은 ‘딱지’를 받았다는 계산이다.
교통문화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들이다.
자동차 대수가 이미 3년 전에 1000만대를 넘어섰고 해마다 10조원 이상의 돈이 교통관련 분야에 투자되고 있다.하지만 교통문화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교통 전문가들은 교통사고의 심각성보다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교량 붕괴나 대형 화재 등의 사고가 일어나면 온 나라가 시끄러울 정도로 관심을 보이면서도 하루에 24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70여명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동아일보는 새 천년이 시작되는 올해도 교통캠페인을 계속한다.교통사고는 단순히 차(車)와 차(車)가 부딪히는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인명 경시,준법의식의 실종에 따른 사회적 병리현상이기 때문이다.
교통문화를 개선하지 않고는 교통사고를 줄일 수 없고 선진국,선진시민이 되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