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바닷가에 나가 놀면 안돼?”
“지금은 밀물이기 때문에 안된단다. 썰물이 되면 나가 놀렴.”
“엄마 언제 썰물이 돼? 빨리 썰물이 됐으면 좋겠어.”
가만히 보니 아이들뿐만 아니라 동네 강아지 바다새 등 모두가 자기를 싫어하고 썰물만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밀물은 썰물을 시기하고 미워하게 됐다.
밀물은 어느날 바닷가의 노송에게 물었다.
“모두가 썰물만 좋아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썰물이란 녀석은 어디에 있는 누구입니까?”
노송은 대답했다.
“썰물은 바로 너자신이란다.”
어느 스님의 수필집에 나오는 밀물 썰물 이야기의 요지다.
새해, 새 천년이 시작됐다.
21세기가 갓 시작된 새해 아침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모두들 새해, 새 천년의 각오와 희망과 포부를 다진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자면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게 어제의 연속일 뿐이다. 법과 제도, 사회와 정부 등 모두가 그렇다. 무엇보다 사람이 그렇다. 새해 들어 태어난 영아가 아닌 한 우리 모두는 어제의 사람들이고 20세기의 사람들이다. 단지 어제의 사람이 내일을 살아갈 뿐이다.
평소 아내와 늘 티격태격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부부싸움의 이유가 별로 심각한 것도 아니었다. 어찌 보면 사소하고 하잘것없는 자존심 대립이나 감정싸움이 주원인이었다. 그 친구가 어느 해 한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미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아이들 학교문제로 가족은 약 반년간 미국에 더 머물고 자신만 귀국해 하숙생활을 했던 것.
그때 그는 처음으로 아내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나를 절감하게 됐다. 가구처럼 늘 거기에 있어 별로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아내가 막상 옆에 없게 되자 모든 게 어설프고 허전해 혼자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거듭 다짐했다.
‘다시는 아내와 싸우지 않고 평생 아끼고 따뜻하게 보살펴주겠다.’
물론 그가 당시의 결심을 100% 실천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이제는 상대의 소중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부싸움을 해도 옛날처럼 심각하게 발전하지는 않는다고.
결국은 우리들 자신이다. 우리 스스로가 과거인과 미래인의 두가지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어느쪽을 선택하는가는 스스로에게 달렸다.
20세기의 마지막 나날들을 보내면서 우리가 버리고 가자고 그렇게도 다짐했던 것은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보자.
지역감정 이기주의 획일주의 소모적인 정쟁 무질서….
이 모든 게 과거 우리들의 못난 자화상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네 마음이 이런 못난 모습들로만 차 있는 건 아니다. 이같은 모습들을 우리 스스로 되돌아보고 부끄러워 하는 능력도 우리에게는 있지 않는가.
우리는 밀물이면서도 썰물이기도 한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어느쪽으로든 변할 수 있다. 이제는 변하자. 아내에게 동료에게 회사에 사회에 변화를 요구하기에 앞서 우선 나 자신부터 변하자. 내가 바뀌면 남도 바뀐다.
정동우〈사회부차장〉for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