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약 먼저 재원은 뒷전?

  • 입력 2000년 1월 7일 19시 53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3일 신년사에서 밝힌 각종 공약을 집행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가 간단치 않은 모양이다. 정부가 부랴부랴 재원조달 대책을 확정했다지만 당장 ‘짜맞추기 예산 편성’이라는 비판이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2조7500억여원의 재원을 올해 안에 추가 조성하기로 했다고 한다. 국고에서 1000여억원,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교육청에서 2000여억원, 국민주택기금에서 2조4500억원을 끌어쓴다는 것이다. 예산당국인 기획예산처와 관련부처가 이틀간 진통을 겪는 협의 끝에 이끌어낸 절충안이라고 하니 일단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 결과야 여하튼 기본적으로 앞뒤가 뒤바뀐 것이 아니냐는 지적은 면키 어려울 것이다.

상식적 차원에서 보아도 대통령의 공약이 그에 따를 재원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대다수 국민은 대통령이 직접 이러저러한 공약을 발표했을 때는 사전에 정부 관련 부서에서 거기에 소요될 재원은 물론 정책 및 사업의 타당성 효율성 등을 검토했으리라 믿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공약을 하고 나자 정부가 뒤늦게 재원 마련 등 그 후속대책을 세우느라 부산을 떨었다니 한 나라의 재정정책과 운용이 그렇게 돌아가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야당 주장대로 뒷감당은 어찌됐든 당장 총선용으로 ‘장밋빛 공약(空約)’부터 해놓고 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듣게 되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공약대로 주택공급을 늘리는 일은 좋은 일이다. 교육정보화도 미룰 수 없고 군 정보화도 중요한 과제다. 문제는 무슨 돈으로 하느냐다. 그런데 결국 국민 부담일 수밖에 없는 재원 조달에 대해서 사전 검토나 대책도 없다가 공약이 있고 나서야 얼마는 기금에서 빌려 쓰고, 또 얼마는 채권이나 증권을 발행해 충당한다는 식이니 과연 그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안될지 누가 장담하겠는가.

더구나 현재 국가 재정상태는 말이 아니다. 3년째 국내총생산(GDP)의 4∼5%에 이르는 재정적자가 누증되고 있다. 정부 지급보장을 포함한 국가부채는 무려 200조원을 넘었다. 국민 한 사람당 400만원씩의 잠재적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97년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에는 그나마 국가 재정은 튼튼했고 그것이 환란극복에 큰 힘이 됐다. 우리 경제가 또 다른 국내외적 충격으로 ‘제2의 위기’를 맞는다면 더 이상 재정부문에 기대기 어렵다. 지금 나라 형편은 곳간은 쳐다보지도 않고 ‘선거용 잔치’를 벌일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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