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덕구/미시경제 역량을 충실히

  • 입력 2000년 1월 7일 19시 53분


금년은 외환위기 극복 후에 찾아온 황금같은 기회이자 엄청난 도전이 시작되는 해이다. 올해를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우리 경제의 명운을 결정하는 갈림길이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변화를 주도하고 자신의 시대적 사명을 정립, 실천한 주체는 강성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숨가쁘게 고생하면서도 약자로 전락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경제가 재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새천년의 시대정신에 맞게 국가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새천년에 들어선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는 시대정신(Zeit Geist)은 무엇인가. 개인의 창의와 지식이 중시되는 신인본주의적 경쟁원리가 적용되는 사회, 즉 특성화 전문화 틈새화된 신지식인이 상호 제휴를 통해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또한 언제나 변신이 가능한 유연한 사고와 반응 체계를 갖춘 역동성이 요구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제 각 개인과 개별기업들은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경쟁력과 역동성을 보유하지 못하면 또 한번 역사의 패자가 될 것이다. 따라서 새천년 국가전략의 핵심도 개인과 기업 각자의 미시적 역량을 한차원 승격시키고 이를 효과적으로 결집시켜 지식과 정보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가 경쟁력을 창출하는데 있다.

한국 경제는 성장 물가 국제수지 등 거시경제 운영에서 우등생 평가를 받지만 개인의 창의력과 전문성, 개별 기업의 독자기술, 디자인, 표준화, 고급인력 확보 등 미시적 역량에서는 아직 열등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 주체 하나하나의 미시적 역량 향상이 담보되지 않은 채 추구하는 총량 극대화 전략은 사상누각과도 같다. 환란의 원인도 결국 외형상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거시경제 뒤에 숨어 있던 미시경제의 부실이 한계에 부닥쳐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산업을 예로 들면 완성차 조립에서는 세계최고 수준에 접근하지만 핵심 부품, 기술 등에서는 자립도가 떨어진다. 반도체 등 전자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재벌 역시 선단식 경영을 통해 집단, 총량으로 승부하려고 했을 뿐 초일류기술 핵심부품 개발에는 소홀했다. 이대로 가다간 다시 부실한 미시적 역량이 거시경제 운영을 크게 제약하고 발목을 잡는 상황이 재연될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추진해온 기업의 지배, 경영, 재무구조의 개혁을 계속 추진하면서 앞으로는 미시역량 향상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하지만 미시경쟁력의 확보, 그 자체만으로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우리의 두 번째 선택은 미시경쟁력을 갖춘 개체들의 역량을 네트워킹을 통해 효과적으로 결집시켜 국가전체 차원에서 극대화하는 것이다.

기업내부 개인들의 역량은 단순한 통합이 아닌 융합을 통해, 상호보완적 특화기술을 가진 기업끼리는 전략적 제휴를 통해 그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대학 연구소의 고급두뇌와 기업의 사업화능력을 결합시키는 산학연 네트워킹 체제는 산업경쟁력 강화의 중심추진체가 될 것이다. 시각을 넓혀보면 한중일 3국간의 경제협력을 위한 동북아 지역경제 네트워킹을 구성함으로써 이들 국가와의 수평적 수직적 분업체계를 구축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이다.

지금까지 2년동안 우리는 경제의 큰 틀을 다시 짜는 과감한 개혁을 실행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근본의 문제, 미시적인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세계 일류경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총량보다 개체, 거시보다 미시적 역량을 결집하고 개별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특히 경제위기 극복의 가장 큰 수혜자인 기업들은 그 수익을 미시경쟁력 강화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

정덕구(산업자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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