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인 북]'철학의 시추'

  • 입력 2000년 1월 8일 09시 06분


▼문성원 지음/백의/256쪽 8500원▼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구별되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에서도 서자(庶子)에 해당하는 루이 알튀세르(1918∼1990). 자신의 철학하는 자세를 석유탐사에 비유한 알튀세르의 말에 따라 ‘철학의 시추’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의 부제는 ‘루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이다.

서울대 철학과 강사인 저자는 서구사회의 배경을 무시하고 알튀세르의 철학만을 떼어내 이해하려는 한국 지식인들의 태도를 경계한다. 알튀세르에 대한 관심이 90년대 초에 잠시 붐을 이루다 스러져버린 것도 이런 경박한 접근에서 비롯된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알튀세르의 철학 자체만 떼어 놓고 보려 할 때 그 철학의 모순과 실패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알튀세르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비판하며 마르크스가 헤겔과 단절했음을 주장했지만 훗날 이 주장은 철회되고 만다.

목적론을 포기하고 미래에 대한 예측과 전망을 도외시하거나 불확실한 것으로 보는 알튀세르 식의 마르크스주의는 현실에서 마르크스주의로 행세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이해는 애초부터 파산을 피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알튀세르의 철학 자체보다 그의 시대, 즉 스탈린 격하 운동과 인본주의의 고조, 베트남전쟁과 중국 문화혁명, 68년5월사태, 소련의 체코 침공 등을 바라보며 끊임없는 반성과 긴장 속에 자신의 철학을 점검해 나갔던 그의 ‘철학적 성실성’에 주목한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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