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이래서 강하다]실리콘밸리의 하버드 파워

  • 입력 2000년 1월 9일 19시 54분


3일부터 7일까지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에는 동부 보스턴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옮아온 듯했다. 전체 학생의 3분의 1인 500여명이 겨울방학을 맞아 이곳을 찾았다. 이른바 ‘서부행(Westrek)’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 8일부터 열린 ‘유럽행(Eurotrek)’에는 겨우 50명이 참가했다. ‘서부행’의 인기가 그만큼 높다.

서부행 참가자들은 벤처 캐피털이나 하이테크 신생기업으로부터 회사전망과 취업기회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상세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설명회에 나온 회사 간부들이 대부분 하버드 경영대학원 선배였다. 이 선배들의 인생 자체가 훌륭한 설명이었다.

지금과 달리 1950년대말∼1960년대초의 실리콘밸리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생(MBA)들에게는 머나먼 변방이었다. 하버드 MBA들은 동부 기득권층(Establishments) 편입이 거의 예약돼 있었다. 그런데도 실리콘밸리 초기 역사에서 하버드 MBA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기술만 있던 실리콘밸리에 동부의 자금을 끌어다 댔다.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실리콘밸리는 생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실리콘밸리에 자리잡은 서부의 명문 스탠퍼드대 MBA들은 주로 당시 세계중심이던 동부로 떠났다.

물론 실리콘 밸리의 모태는 단연 스탠퍼드대다. 1909년 이 대학의 데이비스 조던 총장이 진공관을 발명한 리 드포레스트에게 준 500달러는 최초의 벤처 캐피털이었다. 이 대학의 프레드릭 터먼 교수는 그의 제자 데이비드 팩커드와 윌리엄 휴렛이 1937년 휴렛팩커드를 창립하는데 공헌해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로 불린다.

마찬가지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는 훗날 ‘벤처 캐피털 산업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조지 도리오 교수가 있었다. 육군 준장 출신으로 1946년 스스로 아메리칸연구개발(ARD)이라는 회사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도리오교수는 당시로는 드물게 창업과 모험투자를 강조했다. 그에게 감화를 받은 학생들이 서부로 떠났다.

현재 미국 최고의 벤처 캐피털인 클라이너 퍼킨스 커필드 앤드 바이어스의 공동 창업자 톰 퍼킨스도 그 중 하나. 퍼킨스는 휴렛팩커드에서 일하다 진 클라이너와 손잡고 1972년 벤처 캐피털을 창업했다. 이 회사의 초기 파트너 4명 중 프랭크 커필드도 하버드 MBA출신이며 1980년에 입사해 대표 파트너가 된 존 도어와 파트너 러셀 시젤먼도 동문이다.

1965년 애셋 매니지먼트 벤처 캐피털 회사를 창업한 프랭클린 피치 존슨도, 이 회사의 공동 대표 베닛 두빈도 하버드 MBA출신. 벤처 캐피털인 뉴 엔터프라이즈 어소시에이트의 저명한 파트너 리처드 크램리치도 동문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실리콘밸리에 설치한 캘리포니아 연구센터의 크리스티나 다월 소장은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실리콘밸리 초기에 벤처 캐피털 분야에서 하버드 MBA들이 압도했다”면서 “지금도 이런 전통이 남아 지난해 졸업한 하버드 MBA의 18%가 벤처 캐피털과 인터넷기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졸업생의 3분의 1 이상이 독립적인 자기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점도 하버드 MBA의 특징이라고 밝혔다. 제대로 배운 사람이 선도적 역할을 한다는 것도 미국경제의 강점이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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