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미국]조성택/大入열풍은 마찬가지지만

  • 입력 2000년 1월 11일 21시 59분


▼성적위주 선발기준 탈피▼

미국도 고3 학생을 둔 부모들에게 12월은 ‘잔인한 달’이다. 자기소개서를 포함한 수십 쪽의 지원서를 12월 중순까지 지원 대학에 보내야 한다. 입학이 결정되는 3, 4월까지 학부모 학생 모두 노심초사다.

흔히 한국과 비교해 미국 대학은 졸업하기는 어렵지만 들어가기는 쉽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미국 명문대학은 ‘바늘구멍’이다. 미국 학부모와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은 한국의 수능시험과 비슷한 SAT 성적만으로 입학이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98년 하버드대에 SAT 만점자가 460여명이나 지원했지만 정작 입학허가서를 받은 학생은 200여명에 불과했다. 일류대의 선발기준이 학업성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좋은 예다.

대학의 선발기준은 곧 부모들이 자녀를 교육시키는 ‘지침’이 된다. 명문대에 자녀들을 보내려는 미국 중산층 부모들의 노력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대학의 주요 선발기준인 예체능 능력이나 리더십, 사회봉사활동 경력은 하루 아침에 쌓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고교생들이 수영 음악을 하는 것을 보고 한국인들은 ‘입시지옥’에서 해방된 미국 교육제도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미국의 예체능 교육이 대입 선발기준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적 능력이 안되면 커뮤니티 자원봉사, 학내 서클활동 등을 통해서라도 과외활동의 ‘실적’을 쌓는다. 미국 중산층 가정이 자녀의 과외활동을 위해 쏟는 시간과 노력은 엄청나다. 미국 중산층의 사교육비 부담이 한국보다 컸으면 컸지 적지 않다는 것을 미국에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실감하게 된다.

자녀 교육에 돈 쓰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필요한 교육의 질과 양을 충족하려면 학교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줘야 하는 부모에게는 교육비 부담은 ‘팔과 다리를 자르는 일’이라고 부를 만큼 버겁다. 한국은 사교육비가 대부분 시험준비에 치중돼 서민 입장에선 ‘교육기회 균등’이란 사회정의가 실현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사교육비 자체보다 대학의 선발기준이 더 문제다. 한국 대학의 선발기준은 철저히 성적 중심이어서 고액 과외를 못하는 사람들은 ‘불공정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20여년 전과 비교해 보면 미국의 대입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최근엔 과열경쟁의 조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산층 초등학생들은 평균 2,3과목 이상의 과외활동을 하느라 놀 시간도 없다고 한다. 피아노는 개인 교습이 기본으로 시간당 50달러 안팎이고 피겨스케이팅 수영 교습비도 비싼 편이다. 이곳에도 ‘족집게 과외’가 있다. 유명한 SAT 강사는 시간당 600∼700달러를 받기도 하고 전문 학원은 주말에 하루씩 7주 과정에 700∼800달러를 받는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경쟁에서 이기려면 다른 방도가 없다는 학부모들의 인식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예체능-이색 경험 등 중시▼

경쟁은 긍정적으로 보면 개인과 사회 발전의 원리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제대로 된 선발기준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선발기준은 발전적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 한국 대입제도의 문제점은 과열경쟁 자체보다 학업 성적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천편일률적인 선발방식과 기준에 있다.

예일대 등 다른 명문 사립대와는 달리 하버드대는 성적은 좀 떨어지더라도 ‘드라마틱한 삶’의 주인공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유복한 가정 출신보다 이민 1 세의 가정에서 어렵게 자라났다든지, 혹은 알코올 중독자 가정을 딛고 일어선 학생들을 선호한다. 어려운 가정 출신 학생들의 삶의 경험과 성취 동기를 높이 산다. 신입생 선발은 대학 입장에선 4년을 함께 살아갈 집단을 구성하는 일이어서 구성원이 다양할수록 좋다. 구성원이 다양할수록 경쟁력이 강해진다는 것은 동식물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의 생존 원리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 대학들이 학업성적의 비중을 줄이고 선발기준을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본다.

조성택(뉴욕주립대 교수·불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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