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은 이루어졌다. 기원이 이루어지자 호남사람들은 김대중대통령이 ‘호남 대통령’이 아닌 ‘전국민의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도 호남인들의 그런 바람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 2년이 되는 요즘 분위기는 어떤가. 지역감정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역갈등이 ‘예전보다 더 나빠졌다’가 14%, ‘전이나 마찬가지다’가 51%로 ‘나아졌다’는 답의 두 배가 넘는다.
▼ 아래도 살펴야 ▼
왜 그런가. 우선 지역할거주의에 기반을 둔 정당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집권여당인 국민회의는 줄곧 전국정당화를 통한 국민통합을 내세우지만 한꺼풀 뒤집어보면 우리 안방은 지키되 남의 터에 자리 좀 잡아보자는 당략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장외집회를 한다 하면 제일 먼저 부산으로 달려간다. 현실정치의 이해와 지역민의 정서가 맞물리면서 지역감정이 부풀려지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여야(與野) 모두 필사적인 4월 총선에서 지역주의가 극에 달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기야 뿌리깊은 지역주의가 한두 해에 크게 달라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역감정이란 논리 이전에 정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 국민통합을 앞세우는 ‘국민의 정부’ 하에서도 지역감정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추세라면 이는 대통령부터 왜 그런지를 면밀히 살펴야 할 심각한 문제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인사(人事)다.
이렇게 말하면 정권 측에서는 펄쩍 뛸 것이다. 차관급 이상을 봐라. 아직도 영남 쪽이 호남 쪽보다 많지 않으냐. 호남출신이 약진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TK-PK 정권 때의 싹쓸이식 편중인사에 비하면 이제 겨우 균형을 맞춰나가는 정도라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표면적 균형’의 이면을 간과하고 있다. 며칠 전 만난 여권의 한 중진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 시내 어느 구청의 경우 호남출신 구청장이 자기 지역 사람 데려다가 부구청장에 앉히더니 기획예산과장 총무과장 등 핵심요직에 호남출신을 기용했다. 정부 중앙부처에서도 노른자위 자리는 ‘호남출신이 0순위, 충청출신이 1순위’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대통령은 경제위기도 극복했고 외교도 잘 했는데 왜 그걸 몰라주느냐고 섭섭해하는 모양인데 민심이란 바로 이런 밑의 인사에서부터 돌아서는 것이다. 장차관급 인사의 균형보다는 그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대통령도 알아야 할텐데 아무래도 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 '뒤통수 맞았다' ▼
물론 정권이 바뀌면 권력이동은 필연이다. 인사균형도 필요하다. 그러나 만사가 그렇듯이 서두르면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연고주의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정실-편파인사를 낳기 마련이다. 얼마 전 물의를 빚은 경찰청 총경인사가 단적인 예다. 국방부의 장성급 인사도 호남편중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많았다. 얼마 전에는 정권실세들이 한 정부 부서 차관자리에 특정인사를 밀었다가 여의치 않자 “뒤통수를 맞았다”며 장관을 비난하는 일도 있었다. 이래서야 영남지역에서 국회의원 몇 명 더 만든다고 지역감정이 해소될 수도, 국민통합을 바라기도 어려울 것이다.
김대통령은 ‘새 천년 신년사’에서 “인사를 더 한층 공정하게 하여 명실상부한 국민의 정부 모습을 갖추겠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이런 일들은 모두 대통령을 욕보이는 것이다. 또한 ‘목포의 눈물’은 부르지도 말라던 대다수 호남사람들을 욕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전진우<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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