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 으로 ‘주자가례(朱子家禮)’라는 책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중국 남송 때 주희(朱熹, 1139∼1200)가 편찬했다는 이 책의 정확한 제목은 본래 그냥 ‘가례’다. 조선시대 약 500년 동안 사람들의 생활 구석구석을 지배했던 예(禮)의 기준이 된 것이 이 책이었고 현대 한국인들의 의식에까지 깊이 박혀있는 유교적 가치관의 뿌리도 바로 이 책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정작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은 주변에서 거의 찾아 볼 수가 없고 한글 완역본은 이번에 처음 나왔다. 드디어 현대어로 옮겨진 이 책이 세상에 널리 읽혀 우리의 예의범절을 바로잡고 동방예의지국의 윤리강상(倫理綱常)을 다시 확립하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물론 시대착오다.
“삼년상은 밤에 시신 곁에서 잠을 자는데, 짚을 깔고 흙덩이를 벤다. 병이 났거나 쇠약한 사람은 골자리를 깔아도 괜찮다.”
이렇게 삼년상을 지내고 있다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 속에 시신과 함께 떠내려갈 것이다. 게다가 냉난방 잘 되는 건물에 살면서 기후에 대한 내성이 약해진 현대인은 이렇게 하룻밤만 지내도 골병이 들 터이다.
이밖에도 관혼상제의 번잡한 절차와 까다로운 복식 등이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와 계급질서를 당시 사람들에게 세뇌시키는 사회교육의 기능을 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 한국인들이 일정한 형식에 따라 입학식 졸업식이나 결혼식 신년하례식 등을 행하고 상대에 따라 인사하고 대화하는 형식을 달리 하도록 배우면서 이 사회의 질서를 익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예(禮의) 해석 문제가 정치와 연관돼 수많은 사람이 죽기도 했고 지금은 구태의연한 윤리관의 원천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유교적 윤리관을 도외시하고는 현재 우리의 가치관을 설명할 수 없다. 매일 여기저기서 외치는 도덕성 회복, 가치관 확립, 동아시아적 가치 등도 유교적 윤리관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이제 이 책은 조선시대처럼 필독서가 아니라 학자들을 위한 연구자료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매끄러운 현대어는 아니지만 초학자들이 읽기에는 큰 부담이 없고 140여 개나 되는 복잡한 그림들을 보기 좋도록 정리해 놓은 편집진의 정성도 예사롭지 않다. 496쪽 2만원
<김형찬기자·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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