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대중 '총재'는 어디 있었나

  • 입력 2000년 1월 17일 20시 06분


당리당략적 나눠먹기로 여야가 잠정합의한 선거법 개정안이 다시 고쳐질 모양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어제 국민회의 지도부를 불러 합의안 재검토를 지시했고 자민련과 한나라당도 재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여론의 비판이 워낙 거세 어쩔 수 없이 다시 협상을 하게 된 것이지만 여기까지 이른 상황을 보면 정치권 전체가 과연 제 정신인지 조금이라도 염치가 있는 건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청와대를 포함해 모두가 남 말하듯 책임을 떠넘기고 개혁보다는 밥그릇 챙기기에만 열중하다 여론의 질타에 고개를 숙인 꼴이다.

무엇보다 청와대측 자세가 유감스럽다. 여야가 선거법 등 ‘개악’을 밀실에서 ‘야합’한 날까지도 아무 말이 없다가 하루 뒤에야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유감”이라는 변명성 논평을 냈다. 김대통령은 그 다음날 재검토를 지시했다. 혹시 여론의 비판 강도를 재 보고 ‘안되겠다’ 싶어 그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상식적으로 여당인 국민회의의 총재이기도 한 대통령이 정치관계법 협상내용을 사전에 보고받지 않았을 리 없고 여당에 지시도 했을텐데 남 얘기하듯 유감표명을 하다 뒤늦게 재검토를 얘기한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청와대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합의내용을 몰랐다고도 하는데 그건 오히려 여당 총재로서, 또 철저한 정치개혁을 강조했던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과 같다.

대통령에게 합의 내용이 보고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청와대와 여당간 의사소통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이 정치현안을 분석 대응하는 역할을 다했다면 국민 의사는 무시한 채 떡 주무르듯 만든 법이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시스템의 문제나 여론의 비판에 놀란 뒷북치기 발뺌하기는 한나라당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청와대의 안이한 대처부터 문제삼는 것은 입만 열면 개혁을 강조했던 집권층의 의지가 과연 진실이었는지 본질적 의문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관계법 재협상에서는 개악된 내용들을 철저히 뜯어고쳐 국민의 뜻에 맞춰야 한다. 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87조의 폐지는 물론 의원정수의 축소와 합리적 선거구 조정, 돈 덜 쓰는 선거 구현 등을 위해 여당부터 당략을 버려야 한다. 현역 의원들의 입맛에 맞는 법으로는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한다. 18일까지 연장한 임시국회 회기에 맞추려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근본 문제를 외면한 채 어물어물 짜깁기한 법안을 다시 내놓는다면 낙천 낙선운동보다 더한 국민적 저항이 올 수도 있다. 여야는 완전히 빈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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