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례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안타까움의 차원을 넘어 스스로의 문화 수준과 ‘문화를 보는 눈’을 되돌아보게 된다. 지난 30여년간 우리 사회는 ‘압축성장’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큼 짧은 기간내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도시환경은 빠르게 현대식 건물로 바뀌어 갔다. 우리는 무엇이든 새 것이 최고라는 생각뿐이었다. 그 결과 도시는 오늘날 어떻게 변했는가. 서울의 경우 600년 역사도시로서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전국 어느 도시를 가도 온통 콘크리트숲으로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런 획일화된 도시공간에서 전통과 그것에 바탕을 둔 문화는 살아 숨쉴 수 없다. 국도극장의 사례는 사실 우리가 ‘발전’과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온 ‘과거 파괴’ ‘과거 부정’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발굴조사에서 1500년전 백제 도성(都城)으로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풍납토성도 마찬가지 예이다. 백제가 건국 초기부터 500년 가까이 도읍지로 삼았던 위례성(慰禮城)은 현재까지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이번 발굴에서 왕궁으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발견되는 등 풍납토성이 바로 위례성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만약 학술적으로 공인된다면 우리 고대사 연구의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현재 풍납토성안에는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차 있고 또다른 아파트 신축공사가 잇따라 예정되어 있다. 발굴조사가 끝나고 아파트 건축이 다시 시작되면 각고 끝에 찾아낸 ‘잃어버린 500년’의 백제역사는 아파트 숲아래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된다.
과거 문화적으로 가치있는 것들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은 그것이 후대(後代)에 대한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도극장이나 풍납토성은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줌과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태동시키는 공간인 탓이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든 과거를 파괴해 버리는 일이 더이상 반복된다면 우리의 문화, 우리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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