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년 6월항쟁의 연장선 ▼
물론 차이는 있다. 그때는 학생조직과 시민단체가 야당과 손잡고 집권세력의 물리력과 충돌했고 그 싸움의 무기는 돌과 화염병이었다. 반면 지금은 각계각층 시민단체가 여야 정치권 전체를 상대로 오직 논리의 힘으로 싸우고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무망해 보였던 싸움이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정치적 기득권 세력의 존립을 위협하는 하나의 운동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밑바닥에 더 이상은 억누를 수 없는 슬픔과 노여움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최근의 사태는 6월항쟁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하겠다.
그 동안 워낙 많은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낙천낙선운동의 의미와 정당성에 대해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운동의 의미를 왜곡하고 그 정당성을 훼손하는 정치권과 언론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주장의 핵심은 낙천낙선운동이 여당인 국민회의에는 ‘물갈이’를 촉진하는 효과를 안겨주고 그 요구를 수용할 처지에 있지 않은 한나라당과 자민련에는 ‘낙선’의 부담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시민단체가 이런 식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한 후 특정 정치세력의 후원자 또는 조종자로 변신하고 그 다음에는 그들 스스로 정치세력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예상’이 따라붙는다. 시민단체를 어용이라고 공격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주장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시민단체가 하는 일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다. 낙천낙선운동 대상 정치인을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도 있고 다소 억울하게 리스트에 드는 이가 생길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치권과 언론은 언제든 문제를 제기하고 견해를 피력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정당과 정치인을 이롭게 하고 다른 정당과 정치인을 괴롭게 한다고 해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을 폄훼하는 논리는 근본적으로 이 운동의 본질을 오해한 데서 나온 것이다.
후보자 바로알기운동이나 낙천낙선운동은 근본적으로 국회의원 총선이라는 ‘선거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상품정보’ 공개운동이다. 15일 여야가 합의했던 선거법 개정안에서 보듯 우리 정치를 ‘과점’한 여야 3개 정당은 유권자의 의사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뻔뻔스러운 ‘담합’을 일삼는다. 이것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은 ‘정치소비자운동’밖에 없으며 시민단체는 정확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제공하는 후보자 정보의 정치적 위력은 그 단체의 신뢰성과 정보의 정확성에서 나온다. 만약 유권자가 그 정보를 신뢰한다면 낙천낙선운동은 유권자가 원하는 후보를 내는 정당에 이익을 주고 그렇지 않은 정당에는 타격을 입힐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효과가 없다면야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시민단체들이 불법이라는 비난을 받아가면서까지 그런 수고를 하겠는가. 그리고 유권자가 원하지 않는 저질 후보를 내고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면 도대체 어느 정당과 정치인이 국민을 무서워한다는 말인가.
▼ 개혁위한 '정치소비자운동' ▼
만약 기존 정치권 전체가 요지부동으로 개혁을 거부한다면 국민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새로운 정당이 시민단체의 낙선 리스트 근처에도 가지 않을 만큼 유능하고 깨끗한 후보를 내어 성공을 거두어서 나쁠 것이 없다. 이런 것을 두고서 시민단체가 낙천낙선운동을 통해 특정 정치세력을 후원하거나 조종하거나 스스로 정치세력화하기 위한 ‘중간정거장’으로 삼으려 하는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은 우선 ‘주권재민의 원리’를 이해하는 자기의 눈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너무나 뚜렷한 파당적 관점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러한 충고까지도 특정 정치세력을 후원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배척할 테지만.
유시민(시사평론가) denkmal@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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