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올리버 쉬람/사생활 호기심 강해

  • 입력 2000년 1월 18일 20시 23분


2년 전 처음 한국에 부임했을 때 나는 한국 역사나 문화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외교관으로서 첫 해외 근무지여서 “한국에 푹 빠져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음먹고 ㄱ ㄴ ㄷ부터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에 관한 지식을 열심히 챙겼다. 나는 ‘진짜’ 한국인과 사귀려면 꽤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러움을 타고 조금은 은둔적일 것이라는 한국인들에 대한 내 선입견은 모두 근거없는 것이었다. 공항에 내리면서 나는 세관원과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친근한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내가 어떤 나라에서 왔는지, 가족 배경은 어떤지 등에 대해 과분할 정도로 관심과 호기심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호기심은 때로 대답하기 곤란할 정도의 사생활에 관한 것이었지만 나는 곧 한국인들이 사생활을 아주 공개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따뜻한 인정 환대 그리고 화합과 우정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 관한 교과서에선 읽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양하기 때문에 모두 친구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겸손함과 진심을 갖고 대하면 언젠가는 상대방도 알아줄 것이라는 공통적인 이해가 있다.

한국이 외환위기의 혹독한 시련을 겪을 때도 이런 미덕이 어김없이 발휘됐다.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 당시 한국인의 태도는 바로 ‘자제’와 ‘단결’로 묘사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추구하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정책은 설득력을 얻었고 외국인 투자와 대외 시장개방을 늘리는 것이 결과적으로 한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나는 독일 기업들이 한국경제의 미래를 믿고 참여를 강화함으로써 외환위기 극복에 일조하게 된 것을 보고 가슴이 뿌듯했다.

한국은 음악 미술과 음식이 매우 다양한 나라다. 하회마을 등에서 북 연주나 가면극 같은 것을 볼 때는 현대사회에 전통문화가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기도 한다. 서양 고전음악도 다른 어느 서구 국가 못지않게 사랑을 받고 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비디오 컴퓨터게임 인터넷 등 첨단 문화가 잠식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인적(人的) 요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인들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끼리 자주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 노래방이란 현대적인 방법으로 서로 함께 즐기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좋은 기분전환 방법이다.

나는 한국이 미각의 나라일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풍부하고 다양한 해산물의 맛과 담백하고 영양가 넘치는 채소요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생갈비를 뜯는 맛과 삼계탕의 구수한 냄새는 삶의 질을 더해주는 것 같다. 이젠 잠시 독일에 다니러 갈 때면 나도 모르게 한국 음식이 그리워질 정도다.

▼ 생생한 전통문화에 매료 ▼

한국에 올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남은 근무기간을 최대한 즐기고 싶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나는 한국인 친구들이 2000년에 공사생활에서 행운과 성공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또 한국정부와 국회가 개혁지향적인 결연한 자세를 취하기를 기대한다. 눈앞의 도전과 기회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무엇보다 분단국가의 경험이 있는 독일 친구로서 한반도에 평화가 지속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한국은 많은 친구들을 갖고 있다. 내가 친구의 하나라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한국을 사랑하고 싶다.

▼ 약력 ▼

△1964년 독일 함부르크 출생 △90년 함부르크대 경제학 석사 △91∼93년 외무부 외교관연수원 연수 △ 93∼95년 외무부 지중해국가 담당데스크 △95∼98년 총리실 외교정책분석·연설문 담당관 △98년 주한 독일대사관 부임

올리버 쉬람(주한 독일대사관 정무참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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