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식물과 동물의 계획적인 사육에서는 신과 같았으나 자신의 무계획적인 사육에서는 토끼와 같았다.”(아놀드 토인비)
수십만년전 인류가 등장한 이후 예수가 탄생할 때까지 지구에 발자욱을 남긴 인류의 ‘총계’는 기껏해야 2억5000만∼3억명 가량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두 밀레니엄을 거친 1999년 10월12일 지구는 인구 60억명(Y6B·Year Six Billion) 시대를 열었다.
인구의 급증은 지난 200년에 집중됐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로버트 토머스 맬서스가 1789년 유명한 ‘인구론’에서 인구팽창의 위험을 경고했을 당시 세계인구는 8억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더니 19세기초 10억명을 돌파했고 1900년 15억명을 넘어섰으며 20세기 중반엔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도 25억명으로 늘었고 1960년 30억명을 돌파하더니 이후 12∼14년마다 인도인구(10억명) 만큼 증가했다. 레스터 브라운 미 월드워치연구소장의 표현을 빌면 ‘전세계적인 인구폭발’이 단기간내에 진행돼 온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구폭발은 앨 고어 미국부통령이 저서 ‘위기의 지구’에서 지적한대로 과학기술혁명과 궤를 같이 한다.
특히 의료기술 발달에 따른 영유아 사망률의 현격한 감소 및 수명 연장이 인구폭발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오늘날 영유아 사망률은 100명중 1명 미만이다. 100년 전에는 3명의 자녀 가운데 적어도 1명은 출산 때나 5세 이전에 죽을 확률이 높았다. 동시에 인간의 평균 수명은 66세로 높아졌다. 로마제국 시대부터 1800년경까지 인간의 평균 수명은 30세 이하였다.
◇매년 7700만명씩 증가◇
▼100억시대 온다▼
그러면 21세기에는 표면적 5억2000만㎢의 이 조그만 행성에 얼마나 많은 식구들이 모여 살 것인가. 대부분의 인구학자들은 출생률이 낮아지면서 속도는 둔화되겠지만 인구 증가는 당분간 지속되다 21세기 말경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1999년 세계인구 현황보고’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매년 7700만명씩 증가하고 있는데 그 증가폭이 조금씩 줄어들어 2050년 90억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엔인구기금은 또 2070년경 100억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열린 유엔인구억제 특별총회에선 2050년 세계 인구가 120억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어쨌든 21세기중 인구 100억 시대가 올 것임은 거의 확실하다.
21세기에는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나라들이 인구증가를 주도하며 세계 인구지도가 바뀔 전망이다. 호주 일본 유럽 미국 등 선진국들의 인구는 1999년 현재 11억9000만명인데 이들 나라의 평균 인구성장률은 0.3%에 불과하고 2025년 이전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이미 세계 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는데 2025년까지 30%가 늘어난 47억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세계 인구 1,2위인 중국과 인도의 순위도 40년 뒤면 뒤바뀔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12억8000만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은 남아선호 문화에 따른 여아살해, 호적에 안올리기 등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혹독한 ‘한가정 한자녀’ 정책으로 인구증가율을 1% 이하로 낮췄다. 2050년까지 인구성장률을 ‘0’으로 묶어 16억명 선으로 억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반면 10억 인구를 가진 인도는 아직도 여성 1명당 3명 이상의 자녀를 낳고 있고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현재 7억6700만명의 아프리카 인구는 2035년경 두배로 늘 것으로 보인다. “1960년에는 유럽 인구가 아프리카 인구의 세배에 달했으나 2050년에는 거꾸로 아프리카 인구가 유럽 인구의 세배가 될 것”이라는 유엔인구기금 보고서도 나와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 국가들의 인구증가율이 특히 높다. 여성 1명당 보통 5∼7명씩의 자녀를 낳고 있어 출생률만 치면 더욱 급속히 증가하겠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에이즈가 증가폭을 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1998년 현재 3340만명이 에이즈에 감염됐으며 그 해에만 250만명이 사망했는데 그 가운데 3분의2가 사하라 이남 지역의 주민이었다.
◇생태계파괴 가능성◇
▼인구폭발의 그늘▼
인구폭발은 이미 지구에 큰 경종을 울리고 있다. 신(新)맬서스주의자들과 환경론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식량공급 예측불가, 전지구적 물부족, 석유와 같은 자원의 고갈, 무자비한 생태계 파괴 등을 제시하며 인구문제는 결국 ‘인류생존’과 직결된다고 경고한다.
물부족에 시달리는 인구가 2025년 30억명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식량과 자원위기는 생태계파괴를 초래하고 이는 다시 식량과 자원위기를 가중시킨다.
매년 500만∼700만㏊의 농경지가 황폐화하고 있다. 물과 식량, 자원 확보를 위한 군사적 경제적 전쟁 가능성도 예견된다.
물론 지구는 160억명, 심지어 1조명에 달하는 인구도 수용할 능력이 있다며 인구폭발의 위험성이 과장됐다는 ‘성장무제한론자’들의 반론도 있다. 인구 증가는 죽음에 대한 인류의 승리일 뿐, 지구의 빈 공간이 동이 날 지경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유전자공학 등을 통한 식량증산 대체에너지 개발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
폴 케네디 미 예일대교수의 지적대로 ‘인구의 절대적인 증가보다 그 증가가 개발도상국에 편중되는 현상’이 더 본질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연간 증가 인구의 98%가 개도국에 집중돼 있는데 부는 선진국으로 몰리고 인구는 후진국으로 몰리면서 각종 분쟁과 불안을 부채질한다는 것. 실제 지구는 60억명을 먹여 살리는데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는데도 8억4100만명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연간 13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과 유럽 동물애호가들의 사료비만으로도 기아 인구들에게 최소한의 식량을 공급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비(非)서구 지역의 인구증가에는 또다른 정치적 함의가 있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 미 하버드대교수는 “2025년이 되면 이슬람교도가 기독교도 숫자를 능가하는 ‘인구혁명’이 일어나 서방과 이슬람세계 간의 문명충돌이 예상된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1980년 세계 인구의 18%를 점했던 이슬람교도는 2025년이면 31%로 늘어 기독교 인구를 상회한다는 분석이다.
인구문제는 또 노령화 문제, 노동력 문제, 여성 문제 등과도 얽혀 21세기의 화두가 될 것이 틀림없다. 특히 노령화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60세 이상 인구는 5억8000만명인데 매년 1100만명씩 늘어 2050년이면 19억698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선진국 후진국 인식차 커◇
▼인구문제 해결책은▼
인구폭발의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극단적인 예로 인도네시아 자바의 ‘도지베오’라는 부락은 지난 400년 동안 주민수를 약 40명으로 제한하고 사망으로 인한 보충만을 허용하는 규율이 있다고 하지만 현실에 적용하기는 불가능하다.
서구의 많은 인구학자들은 후진국의 가파른 인구 증가를 인위적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유엔기구 등은 “향후 10년이 세계 인구의 증가폭을 가늠할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15∼24세의 왕성한 생식 능력을 보유한 젊은층이 10억명에 달하며 이들의 대부분이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여성교육과 피임법 보급 등을 통한 산아제한과 국제적인 환경보호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인구를 국력의 한 요소로 보는 제3세계 국가들 중 상당수는 ‘인구억제 강요가 제국주의의 횡포’라고 이해하는 데에 미묘한 문제가 있다. 이들은 선진국에 집중된 부의 재분배가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인구문제가 남북문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인구문제를 대하는 개별 나라의 입장은 상이하다. 인구억제의 절실함을 강조하는 선진국조차 인구문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1994년 카이로 세계인구회의는 개도국의 산아제한과 생식보건사업을 위해 2000년까지 170억, 2015년까지 220억달러가 필요하다며 선진국들은 그중 3분의1을, 개도국은 3분의2를 부담키로 합의했지만 선진국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인구폭발은 분명 인간과 지구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낳고 있다. 지구는 이미 1초당 2∼3명씩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할 한계를 넘어섰는지도 모른다. ‘지구의 복수’가 이미 시작된 것인가. 혹시 100년 뒤에는 인구문제로 고민할 기회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지구적 차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키워드: 피임▼
지난 100년 동안 인구가 4배로 증가했지만 그나마 계속되는 출산율 저하 때문에 이같은 증가추세가 인구의 ‘빅뱅’으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그 ‘일등 공신’이 현대적 피임법의 개발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10쌍의 부부 가운데 6쌍은 산아제한을 위한 각종 피임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통계다. 30년전만 해도 10쌍 중 1쌍 정도만 피임법을 사용했다.
피임의 역사는 길다. 기원전 1850년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는 악어의 배설물에 꿀을 배합해 성교전 여성의 질에 넣었다는 기록이 있고 히포크라테스는 야생 당근의 씨를 먹으면 임신이 예방된다고 했다.
근대적 개념의 피임법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됐다. 콘돔은 1840년대 고무의 발명으로 보편화됐고 1879년 질 좌약식 피임제가 개발됐다.
1960년 먹는 피임약의 개발은 혁명적이었다. 미국가족계획연맹의 후원으로 내분비학자 그레고리 굿윈 핀커스박사가 정해진 시간에 제대로 복용하면 99%의 피임률을 자랑하는 경구 피임약을 개발해 출산률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최근에는 여성용 콘돔도 나왔으며 남성용 먹는 피임약도 개발됐다.
앞으로 정충의 생산이나 정충의 기능을 방해하는 약물학적 방법, 정관으로 지나가는 정충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 완벽한 질내 삽입식 살정제 또는 차단제 등 미래형 피임법도 개발될 전망이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인구성장을 주도하는 저개발국 또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현대적 피임법의 보급 및 여성교육이 더 절실한 문제일 수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여성들은 아직도 한사람당 평균 5∼7명의 자녀를 낳고 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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