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화성/"어깨 힘빼, 다쳐"

  • 입력 2000년 1월 21일 02시 36분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길가의 돌멩이를 보면 발로 차고 싶다.

그렇다. 인간의 본능은 원래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운동도 마찬가지. 세계적으로 내로라 하는 운동선수들은 하나같이 몸이 부드럽다. 자세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축구를 보자. 브라질축구는 시와 같다. 부드럽고 리드미컬하다. 모두들 콧노래를 부르며 산책이라도 나온 듯 몸에 전혀 힘이 들어 있지 않다. 한마디로 공을 둥글게 찬다.

한국축구는 어떨까. 한눈에 봐도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뻣뻣하다. 필사적이다. 온몸을 던진다. 쯧쯧 저러다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한마디로 공을 ‘직선적’으로 찬다. 안정환이나 고종수가 잘한다는 것은 몸이 부드러워 공을 둥글게 그리고 쉽게 찬다는 것이다.

몸에 힘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유도국가대표 박종학감독은 “큰 부상이 잦아 선수생명이 짧다”고 단언한다.

유도선수중 몸이 부드럽기로는 은퇴한 전기영이 으뜸으로 꼽힌다. 그의 특기는 왼쪽 업어치기. 상대는 전기영의 기술을 뻔히 알면서도 눈뜨고 한판으로 넘어가곤 했다. 전기영은 그 유연한 몸으로 93, 95, 97 세계유도선수권 3연속 우승에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금을 따냈다.

야구스타 선동렬(37)과 김용수(40)가 그 나이까지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몸이 부드럽기 때문. 부상이 적을뿐더러 제구력도 빼어나다. 야구 해설가 허구연씨는 “빠른 직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공이 갑자기 슬라이더로 빠질 때 몸이 부드러운 타자는 그 공을 맞힐 수 있지만 뻣뻣한 타자는 꼼짝없이 당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몸이 부드러운 대표적인 타자로 이병규와 이승엽을 꼽았다.

세계적인 마라토너들은 힘이 하나도 안들게 뛴다. 찬찬히 살펴보면 발목의 반동을 이용해 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헛힘을 쓰지 않아 에너지를 최대한 아낄 수 있다. 이중에서도 케냐선수들이 뛰는 모습은 어릴 때 산과 들을 뛰어다니던 바로 그 자세다. 천진난만하고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뜻에서 둥근 공은 인간이 발명한 것 중 최고로 황홀한 놀이기구임에 틀림없다. 농구공 축구공 배구공 야구공 테니스공 당구공 탁구공….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한곳을 고집하지 않는다. 부드럽다.

흔히 한국체육을 ‘3S(Speed, Spirit, Stamina) 스포츠’라고 일컫는다. 쉽게 말해서 ‘깡과 체력’으로 한다는 것이다. 어디 체육만 그럴까. 가만히 보면 한국정치 한국사회 한국정부 한국경제 한국문화 다 닮은꼴이다.

21세기 새 즈믄 해. ‘깡과 근육질’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아탈리는 21세기를 ‘신유목민의 시대’라고 했다던가. 유목민이란게 뭔가. 한마디로 유연하기가 둥근 공보다 더한 ‘바람’ 같은 것 아닌가. 신천지 ‘제7대륙 인터넷’을 떠도는 N세대 신유목민들.

그러나 몸 중에서 힘을 빼지 말아야 할 곳도 있다. 한국 프로복싱 최고령 현역복서인 올 서른다섯살의 김종길은 말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눈’에서 힘을 빼면 그때부터 힘 한번 못쓰고 꼼짝없이 당합니다.”

김화성<체육부 차장>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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