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염홍철/구조개혁에도 先後있다

  • 입력 2000년 1월 21일 20시 12분


필자는 2년여 동안 대전시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지방의회만 구성된 상태였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중앙정부가 임명했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엄격한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자율과 분권이 거의 배제되었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명목상 권한을 위임해 놓고 이것을 개별법으로 다시 묶는 것이 허다하다.

일례를 들어 건축허가권은 구청장에게 위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청장은 건축관련법이나 중앙정부가 만든 시행령에 따라 기계적으로 도장찍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그 지역의 여건이나 특성은 전혀 고려할 수 없고 중앙에서 일률적으로 정한 기준에 따라 획일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분권 자율 책임 경영 창의라는 본질적 요소는 실종되고 말았다. 이는 민선 지방자치 2기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크게 개선된 바 없다.

그 후 정부산하기관에서 근무해 보니 몇배의 규제와 간섭에 시달리고 있었다. 현 정부는 그동안 민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을 강도 높게 추진했고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도 정부의 규제완화는 본질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필자가 경험한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공항공단 사례를 중심으로 정부 규제와 비효율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자면 첫째, 과다한 업무규제와 감독이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으나 당시만 해도 16개 공항을 관리하고 연간 3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집행하는 공항공단 이사장이 공항 내에 승객 편의를 위한 표지판이나 플래카드조차 감독관청의 허가 없이는 걸 수 없었다.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부문으로 예산 조직 인사 회계 분야의 과도한 행정규제와 지시는 정부 산하기관의 행정력 낭비와 경쟁력 약화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감독 기관과 관련 업무의 중복이다. 공항공단의 주무감독기관인 건설교통부를 제외하고도 감사와 점검을 하는 기관은 감사원, 환경 노동 소방관련 부처, 지방자치단체 등 수없이 많고 연평균 30회 이상의 감사와 점검을 받아야 한다. 건설교통부도 본부의 항공국, 지방 항공청, 지방 공항 주재관 등이 중복적으로 그리고 경쟁적으로 감독권을 행사한다. 물론 관련 법규에 각 기관의 업무 내용이 명시돼 있으나 그 구분이 모호하고 중첩돼 있기 때문에 예산과 인력의 낭비는 물론이고 사업 계획의 수립과 시행에 혼란을 가중시킨다.

셋째, 경영 마인드를 가질 수 없게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부 산하기관은 주인 없는 조직으로 인식돼 있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로 만일 기관장이 사명감을 갖고 잘못된 ‘관행의 파괴’를 시도한다면 그 기관장은 살아남기 어렵게 되어 있다. 개혁적 조치를 취하다 보면 첩첩이 쳐져 있는 ‘관료적 기득권’의 그물에 걸리고 만다. 그리고 한 부처를 설득하면 이해관계가 다른 타 부처에 의해 제동이 걸리고 만다.

물론 국민의 정부가 과거 정부의 잘못된 제도나 관행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역대 정부도 집권 초기에는 개혁의지를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으나 거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었겠지만 개혁에서 하드웨어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큰 개혁’을 통한 전시효과만 노렸지 실제로 국민 편의와 관련된 소프트웨어 부분은 무시한 것이다.

지금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퇴출, 기구축소, 인력감축이라는 외과 수술적 구조조정은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관료에 의한 간섭, 형식주의, 부처 이기주의, 기득권 보호, 과도한 행정규제 등 잘못된 관행을 확실하게 바로잡는 소프트웨어적인 구조개혁이 더욱 우선돼야 한다.

염홍철(경남대교수·전 대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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