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법공과 장엄'/불교예술을 알면 전통철학이 보인다

  • 입력 2000년 1월 21일 20시 12분


▼'법공과 장엄' 강우방 지음/ 열화당 펴냄/582쪽, 5만원▼

‘법공(法空)과 장엄(莊嚴)’.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은 한국미술사 연구서. 이 책의 메시지는 제목보다 더 의미심장하고 문제적이다. 서구식이 아닌 독자적인 한국미술사 연구 방법론을 모색한 역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30년 넘게 한국불교미술사를 연구해 온 이 분야의 권위자 강우방 국립경주박물관장(59).

삼국과 통일신라시대 불교미술의 미학과 사상적 배경을 고찰하고 이를 통해 한국미술사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 방법론은 제목 ‘법공과 장엄’에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미술사연구 새방법론 제시▼

법공은 진리를, 장엄은 예술을 뜻하는 불교용어. 종교가 진리를 지향하듯 예술 역시 수단에 머물지 않고 진리를 추구한다. 다른 것이 있다면 법공은 정신적인 상태고 장엄은 물질적인 장식이라는 점.

그러나 예술가가 진리를 실현코자 할 때, 그 둘은 하나가 된다. 불교의 진리를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 불상이고 건축공간으로 형상화한 것이 사찰이듯.

법공과 장엄은 그래서 종교와 예술의 관계를 의미한다. 동시에 종교미술의 원리를 추출해내려는 저자의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즉 종교예술(불교미술)이 어떻게 종교(불교)적 진리를 형상화하는 지를 규명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저자는 불교미술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석굴암 불국사 성덕대왕신종. 저자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각론을 거쳐 이들 모두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라는 한국 불교 화엄사상을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석굴암은 불신(佛身)을, 불국사는 불토(佛土)를, 성덕대왕신종은 불음(佛音)을 구현한 작품들이다.

▼"예술철학으로 승화" 주장▼

이는 법공과 장엄, 즉 종교와 예술은 갈등이 아닌 조화의 관계임을 말해준다. 뛰어난 종교 예술은 종교의 경전보다 더 순수하고 완벽하게 종교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논의는 예술품의 배경이 되는 종교 사상 철학에 대한 깊은 천착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미술사 연구는 이에 제대로 주목하지 않았다.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한국미술사 연구는 궁극적으로 한국의 철학과 사상에 대한 심층 탐험을 통해 예술철학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즉 사상사로서의 한국미술사이다.

이 책은 서양의 이론틀로 한국미술을 연구하거나, 개별적인 작품 분석과 나열에 머물러온 일부 연구자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또한 미술사가 이론에만 몰두하는 학문이어선 안되고 예술 대상을 깊게 관찰 분석하며 그것에 미적 감응과 체험을 조화시키는 살아있는 학문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장과 작품을 소홀히 하는 연구 풍토에 대한 비판이다.

전문 연구서이면서도 논의 과정은 논리적이되 종교적 사색적 문학적이다. 잘 다듬어진 유려한 글이 독자에게 예술적인 감동을 안겨준다. 심미적이고도 철학적인 안목으로 정평이 나있는 저자의 장점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582쪽, 5만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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