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김영하/인터넷시대를 사는 법

  • 입력 2000년 1월 23일 19시 12분


인터넷 서바이벌 게임이 한때 유행이었다. 밀폐된 공간에 사람을 가둬놓고 인터넷만으로 생존이 가능한지를 겨루는 게임이었다. 물론 결론은 ‘어렵긴 하지만 할 수 있다’였다. 앞으로는 그런 게임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인터넷은 전화와 팩스, 텔레비전과 비디오의 모든 기능을 흡수 통합하는 다기능 매체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므로 생존은 문제없을 것이다.

▼ 생존의 문제 답 못해 ▼

그러나 생존만 하면 다일까? 속옷을 사다 입고 피자를 시켜 먹으면 인간은 만족할 수 있을까? 인터넷이 보장해준다는 장밋빛 미래, 과연 그렇게 그럴듯한가? 이를테면 인터넷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 남자와 저는 결혼은 안 했지만 2년이나 같이 살았지요. 그런데 어느날 그 남자가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결별을 요구했어요. 저는 어쩌면 좋은가요?”

“사는 게 무의미합니다. 사람들이 두렵습니다. 20년이나 다니던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를 당했습니다”

“평탄하게 60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이제 아이들도 출가하고 아내와 단 둘이서 신도시의 중대형 아파트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밤만 되면 뭐라 말할 수 없이 허무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엄마와 저를 개 패듯이 두들겨 팹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차라리 단란주점이 속 편해요.”

인터넷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연결해줄 뿐이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문제들을 지겹도록 겪으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아침이면 자명종을 눌러 꺼야 하고 찌뿌드드한 몸으로 죽 한 그릇을 들이마신 뒤 버스와 지하철에서 땀냄새를 맡으며 직장으로 가야 한다. 12시가 되면 개미떼처럼 빌딩에서 몰려나와 김치찌개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줄을 서야 한다. 퇴근 후엔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술상무가 되어야 하고 쓰린 속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아니, 지금 생존마저도 위태로운 마당에 인간적인 문제? 배부른 소리 아니냐고 되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인터넷을 모르면 취직도, 승진도 못하고 벤처의 골드러시에도 낄 수 없고, 심하면 해고까지 당할 수 있는 마당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안다고 그 모든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실 인터넷은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한 사람이라면 빠르면 하루, 늦어도 한 달 안에는 전화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매체다. 그럼 그 다음엔? 문제는 하나도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남는다. 아니, 어쩌면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에 관해 유포되는 유토피아적 이미지들은 어딘가 미심쩍다. 인터넷은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새로운 문제들을 생산할 가능성이 크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런 말을 했다. “과거엔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검열을 했지만 지금은 정보를 무제한으로 방출함으로써 검열한다.” 인터넷은 천문학적으로 많은 정보를 쏟아내지만 그것을 통해 의미 있는 정보들을 묻어버린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아침마다 수백통의 E메일을 열어보지만 대부분은 상업광고이거나 쓰레기들이다. 그런데도 이 정보 걸식증(乞食症)은 멈출 줄을 모른다. 온 사회가 부추기는 정보강박증이 주범이다. 정보, 정보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정보에 굶주렸다는 착각 속에서 잠을 줄이고 식사를 거른다.

그러나 정보가 없어서 문제인 적은 없었다. 정보는 어디에나 있었다. 도서관에, 신문에 다 있던 것이었다. 인터넷이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만이 증가되었을 뿐이다.

▼ 정보가공 판단능력 필요 ▼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를 가공하고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실존적 의지다.

정보는 정보일 뿐이다. 게다가 공짜세상인 인터넷에 그렇게 질 좋은 콘텐츠들이 즐비하지도 않다. 설령 즐비해도 문제다. 여전히 인간은 먹고 싸고 자고 죽는다. 살기란 외롭고 고달픈 일이다. 그러니, 이제 문제는 다시 철학이며 인간학이다.

김영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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