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라는 ‘민의의 전당’에 국민 주권을 위임받을 자격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들어앉아 정치발전을 가로막고, 민생을 돌보기는커녕 부담을 주어온 데 대한 실망과 좌절이 해를 거듭하면서 깊어졌다. 정치권이 이런 부적격자를 걸러낼 장치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이 나섰다는 측면에서 이번 ‘공천반대’ 명단 발표는 우리 정치사의 한 의미 있는 이정표(里程標)로 새겨지게 될 것이다.
이제 정당이 답할 차례다. 정당 스스로가 비리 부패에 연루된 인사들이 당내에 적지 않아 손가락질 받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66명의 명단에 대해 ‘부당한 살생부’라거나 ‘정치적 음모’라고 무작정 밀어붙일 게 아니라 진지한 자세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만일 정당에 의해 명단이 묵살되고 문제 인사들이 거기서 걸러지지 않으면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준엄하게 심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총선연대가 작성해 발표한 명단에 관해 한두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정치인으로서의 정책판단은 시기와 입장에 따라 상대적인 것인데도 일의적(一義的)으로 선을 그어 ‘이랬다 저랬다 했으니 공천반대’라거나,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정치관 가치관의 차이를 일도양단식으로 재단해서 ‘부적격’이라고 내놓은 케이스가 있다.
그리고 선거법 위반을 엄하게 추궁해야 정치가 맑아진다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법원에서도 80만원 이하의 벌금(벌금 100만원 이상 선고 때 의원직 상실)이라는 ‘경미한 사안’으로 판단해 피선거권을 박탈하지 않은 인사에 대해서까지 굳이 공천반대에 나서고, 또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도 포함시켰는가 하면 아직 확정판결도 나지 않은 사람까지 명단에 넣어 ‘무죄추정의 원칙’을 거스른 대목도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하는 듯한 시민연대 관계자의 말은 ‘독선과 자만’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총선연대가 공신력과 합리성 객관성을 무기로 ‘낡은 정치’와 싸워 이기려 한다면 그 절차나 방법도 적확(的確)해야 할 것이다. 15대 전 현직 의원 329명 이외의 제2차 ‘공천반대’ 대상자 선정 시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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