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나는 정치엘리트의 순환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엘리트 순환론자들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 사회의 엘리트층 내부가 새로운 피로 순환되지 않을 때 그 지위는 위협받는다. 우리처럼 엘리트의 순환이 상대적으로 더딘 사회에선 더 그렇다.
우리는 오랜 권위주의 지배체제 탓인지 정치엘리트층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 멀리는 3공에서 가까이는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늘 보던 사람들, 그것도 도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인물들이 항상 정치의 중심에 서 왔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고착화된 엘리트구조를 밑에서부터 흔들고 있다. 그들은 보다 도덕적이고 다원적인 사람들에 의해 엘리트층이 바뀌기를 바라고 있다. 정치학자 가예타노 모스카의 말처럼 “기성 엘리트들의 행동양식이 한 사회의 발전수준에 비추어 적합하지 못할 경우 그들은 다른 엘리트에 의해 대체된다”고 믿고 있다.
낙선운동은 또한 시민사회의 성장을 반영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적지 않다. 우리처럼 시민사회의 역량에 비해 국가 권력구조가 기형적으로 비대해져 버린 사회일수록 시민사회의 성장은 중요하다. 군이나 검경(檢警)으로 대변되는 물리적 통제기구의 전횡은 결국 시민사회의 미성숙에 기인한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이런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현실적 한계를 갖는다.시민단체의 대표성 논란이나 사고의 편향성 시비를 재론하자는 것이 아니다.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럽지만 지역감정이 큰 한계 중의 하나라는 얘기다. 이런 사실은 총선연대의 ‘공천반대 인사’ 명단에 포함된 의원들 모두가 참담해 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서도 드러난다. 솔직히 특정지역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거의 동요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명단에 백번 올려봐라…”며 냉소 짓는 의원들도 있다.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여야 지도부에서도 “명단으로 영향을 받을 곳은 서울과 수도권 정도고 영호남은 괜찮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자민련 관계자들은 “차제에 민주당과의 대립구도로 가면 (JP) 바람이 불어 선거에 불리할 것도 없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진위는 모르지만 낙선운동에 대한 DJ와 시민단체의 음모설이 돌면서 특정지역의 여론이 싸늘하게 식고 있다는 현지의 전언도 있다.
이래서야 낙선운동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심하게 말하면 몇몇 의원 혼내주려다 지역감정만 부추겼다는 비난도 나올 수 있다.
지역감정의 폐해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문제의 해소 없이 낙선운동의 착근은 어렵다는 생각이다. 무리한 부탁인지는 모르겠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사회의 엘리트 순환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시민단체들은 이 문제부터 고민했으면 싶다.
정치인 몇 사람 ‘명단’에 올렸다고 자족하지 말고 지역의 벽을 넘을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모색했으면 한다는 얘기다. 안되면 범 시민연대적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낙선운동도 산다.
이재호<정치부차장>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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