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거탓에 차관인사 지연된다면

  • 입력 2000년 1월 25일 20시 01분


‘1·13개각’ 직후 이뤄졌어야 할 후속 차관인사가 2주 가까이 지연돼 일부 부처의 행정혼선이 심각하다고 한다. 외교통상부의 경우 ‘기존’ 차관과 차관 내정자가 동시에 출근, 직원들이 벌써 2주째 매일 ‘두 차관’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또 현 차관의 교체가 점쳐지는 몇 부처에서는 직원들이 일손을 놓아 행정마비가 우려되며 재임명을 받지 못한 차관들도 역시 인사에 신경을 쓰느라 일은 뒷전에 놓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게다가 안타까운 것은 후속 차관인사를 왜 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확실한 설명이 없어 부처마다 언제 어떤 식의 인사가 있을지 청와대 눈치만 살피고 있다는 점이다.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후속 차관인사가 지연되는 데 대해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총선에 내보낼 후보와 일부 차관자리를 저울질하고 있다거나 부처별 차관 적임자를 못 찾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한다. 사실이라면 문제가 크다. 우선 단절없이 이루어져야 할 국가행정이 한 정당의 공천문제와 맞물려 공백현상을 보여서는 말이 안 된다. 아무리 국가 엘리트의 재배치를 신중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이해한다 해도 여당의 선거전략 때문에 행정이 혼선을 빚는다면 이는 대통령이 국가 최고책임자로서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가뜩이나 대통령이 여당의 총선승리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소리가 있는 터에 총선후보와 차관직을 저울질하느라 해야 할 인사를 지연시키는 게 사실이라면 어떤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적임자를 찾지 못해 인사가 늦어지는 것이라 해도 문제는 있다. 1·13개각은 대통령이 이미 지난해 말에 예고했던 것이다. 한 달이 넘게 개각의 폭과 시기, 충원할 인물까지 생각했을 텐데 새로 쓰는 장관 등과 호흡을 맞춰 부처를 이끌어야 할 차관의 후속인사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 없다. 개각 이후 어떤 사정변경이 생겨 계획한 후속인사의 판을 새로 짜려는 것인지는 모르나 어느 경우든 행정의 공백 단절이 없도록 인사를 해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난 것임이 분명하다.

청와대측은 차관인사 지연에 대한 비판이 일자 “의견수렴 중이며 곧 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가운영의 기본적 부분도 챙기지 못한 데 대한 해명치고는 군색하다. 항간의 분석처럼 이번 인사지연과 그에 따른 행정의 공백이 정말 여당의 공천작업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의심을 받는다는 자체가 국정운영의 미숙함을 드러내는 한 사례이다. 개각에 이은 후속 차관급 인사가 늦어진 데 대한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하며 오늘이라도 당장 인사를 해 업무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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