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효석/'테헤란 밸리' 빨리 크려면…

  • 입력 2000년 1월 26일 19시 08분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 일대가 벤처 1번지로 떠오르고 있다. 아이디어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꿈을 향해 도전하기 위해 이곳에 몰려든다. 이 곳은 밤낮이 없다. 이러한 열기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돈이 없어 사업을 못했던 많은 꿈나무를 길러내고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제 우리는 테헤란밸리를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세계적인 첨단산업의 메카로 만들어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테헤란로 일대로 모여드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이해 없이는 테헤란밸리를 실리콘밸리로 키울 수 없다. 흔히들 스탠퍼드대를 중심으로 한 우수 인력 및 기술의 공급과 산학연계, 쾌적한 주거환경, 자유로운 사고와 문화 등이 실리콘밸리의 성공요소라고 거론한다. 그러나 실리콘밸리가 앞서갈 수 있는 문화와 시스템을 몇몇의 구성요소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수많은 벤처기업가와 기술자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하고 기업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실리콘밸리가 벤처기업이 창업 성장 발전하는 가장 효율적인 경제시스템 또는 생태계를 제공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테헤란밸리가 실리콘밸리처럼 하나의 경제생태계로 커 갈 수 있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지식네트워크의 구축이다. 이들이 단순히 모여 있는 것만으로는 안되며 첨단산업의 필수요소인 지식이 생성 교환 확대재생산되는 효율적인 경제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러한 경제시스템은 다양한 지식네트워크와 휴먼네트워크로 구성된다. 지식네트워크와 지식의 공유, 그리고 확산은 실리콘밸리나 테헤란로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모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주요 지역신문에는 매일 10여개의 모임이 소개된다. 이러한 모임에는 벤처기업가 벤처캐피털리스트 공인회계사 변호사 홍보대행사 창업지망생 등이 참가한다. 이 같은 모임을 통해 노후(know-who)를 얻게 된다.

둘째, 테헤란밸리의 모임들은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 지식네트워크는 몇몇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의 폐쇄적인 사교모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식네트워크간에 편가르기나 배타성이 있어서도 안 된다. 지식네트워크는 학습마당으로서 새로운 지식이 생산되고 공유되어야 의미를 가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터넷처럼 개방적이어야 한다.

셋째, 기술혁신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지역 내 지식네트워크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테헤란밸리가 경제 생태계로서 환경에 적응하며 동태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려면 새로운 지식이 시스템 내에서 창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혁신의 주체인 대학 연구소 등과의 네트워크도 필수적이다.

넷째, 테헤란로 일대는 새로운 기업문화의 발원지(發源地)여야 한다. 여기에서 새로운 기업 및 경영문화를 시험하고 선도해야 한다. 과거 대기업들이 갖고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기업문화를 버리고 21세기 디지털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투명하고 유연한 경영문화를 시험하는 곳이어야 한다. 전문경영인제도, 스톡옵션, 다양한 제휴관계, 그리고 투명한 경영과 회계 등 새로운 제도와 기업문화를 실험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다섯째, 한국의 벤처 밸리로 머무르면 안 된다. 세계 유수의 정보통신 인력들이 테헤란로를 거닐어야 한다. 그들과 지식을 나누고 기술을 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유수기업의 테헤란로 진출뿐만 아니라 테헤란로 벤처기업들의 세계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테헤란 밸리는 자생적인 벤처생태계로 성장해야 한다. 실리콘밸리가 살아 움직이는 이유는 많은 기업이 실패해 사라지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신규 벤처기업이 끊임없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한 회사에 머무르기보다는 자기 능력을 극대화시켜 줄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하면서 지식이 자연스럽게 전파되고 흘러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테헤란밸리도 이처럼 유연하고 개방적인 자기진화시스템을 갖추어야만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김효석<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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