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이대앞 고층빌딩 논란

  • 입력 2000년 1월 26일 19시 08분


서울 마포구 대현동 이화여대 정문 앞은 소비와 향락 그리고 패션의 거리로 통한다. 이곳에서는 현재 ‘교육환경권과 사유재산권’이 첨예하게 맞부딪쳐 갈등을 빚고 있다.

이화여대 앞 낡은 주택가를 고층 주상복합건물로 재개발하겠다는 주민들과 이에 반대하는 대학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것. 여기에 언제든지 비슷한 문제에 부닥칠 수 있는 다른 대학들이 이화여대측에 가세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더욱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다.

▼ 건물신축 논란 경위 ▼

문제의 현장은 서울지하철 2호선 이대역 앞에서 50m 가량 떨어진 대현동 56의 40 일대 2000여평. 이화여대 정문에서는 직선거리로 220m 가량 떨어진 곳이다.

길가에는 단층상가가 자리잡고 있지만 그 뒤쪽에는 낡은 가옥 80여채가 몰려 있어 외관상 빈민촌같은 주택가다. 주민들은 2000평 중 도로쪽 1000평은 어린이놀이터 등 공원으로 만들고 뒤쪽 1000평에 지상 23층, 지하 7층의 대형 주상복합건물을 신축할 계획이다.

이곳 땅은 서대문구청 소유지만 건물은 서울시가 80년 당시 거주자의 재산권을 인정해줘 주민들이 소유권자이다.

40년대에 공원부지로 지정된 뒤 건물 신축 및 보수가 금지돼 왔으나 서울시가 85년 도심정비 차원에서 재개발지구로 용도를 변경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이 재개발조합을 구성, 주상복합건물 신축을 추진하면서 대학측과 2년째 갈등을 빚고 있다.

▼ 대학측 입장 ▼

이화여대 교수 직원 학생 등 100여명은 26일 정오 ‘교육환경 수호, 공원 되찾기’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정문앞길을 행진했다. 지난달 초부터 매주 수요일에 벌이는 정례적인 시위다.

국문과 2년 정이랑(鄭二朗·20)씨는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건전한 대학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재개발지구 전체를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화여대 전길자(錢吉子)학생처장은 “40년대에 서울 지역에서 공원부지로 지정된 108개 지역 중 아직까지 공원이 들어서지 않은 곳은 이곳 뿐”이라며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조합원들의 재산상 피해는 공원부지를 재개발지구로 지정한 책임이 있는 서울시가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 주민 입장 ▼

문제의 현장에는 86채의 건물에 집주인과 세입자 등 300여명이 살고 있다. 모두 무허가 건물로 그동안 증개축을 할 수 없어 빈민촌처럼 변했다. 집주인 중에는 6·25전쟁 직후 가건물을 지어 눌러앉은 사람이 많다.

72년에 5000여만원을 주고 80평 대지 위의 건물을 구입해 살고 있는 정운희(鄭雲熺·65)씨는 “이곳 주민들은 수십년간 제대로 수리도 못한 채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살아 왔다”며 “대학가 부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언제까지 이런 불이익을 받아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또 한 주민은 “이화여대 정문 바로 옆에 고층 아파트(럭키 아파트)가 즐비한데 대학 정문에서 220m나 떨어져 있는 곳의 재개발을 대학측이 극력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 확산되는 논란 ▼

이화여대측은 이번 주상복합건물 신축 반대운동을 전국의 대학가 교육환경 개선 운동으로 확대시켜 학교 주변 일정한 지역 내에서는 신축건물의 고도를 제한하는 내용의 법률이 제정되도록 여론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전길자학생처장은 “조만간 서강대 홍익대 등 8개 대학 학생처장이 모여 ‘신촌교육환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전국의 대학과 연계해 학교 주변 교육환경의 전반적인 개선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기홍·이명건기자> sechepa@donga.com

▼ 전문가 의견 ▼

전문가들은 재개발조합과 이화여대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지만 고층빌딩이 들어서는데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했다.

또 이번 기회에 유흥주점과 각종 상업시설이 몰려있는 이화여대 앞 상가지역을 종합적으로 재정비하는 방안을 검토해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시립대 송인호(宋寅豪·건축도시조경학부)교수는 “조합 주민들과 대학의 대립관계보다는 서울 시민 전체의 입장에서 이 지역을 어떻게 꾸며야 하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유동인구도 많은 곳이므로 공원용지 확보가 일단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숭실대 진정화(秦晶和·건축학부)교수도 “주변이 저층 지역인데 고층 건물 하나가 불쑥 올라가는 것은 곤란하다”며 “주민들의 요구를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추진중인 신축건물의 높이는 최소화하고 공원용지는 최대한 확보하는 절충안을 찾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교수는 논란의 대상이 된 지역의 주변부가 마구잡이로 개발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시간을 갖고 이 일대 전체를 저밀도로 재정비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종합적인 재정비안을 통해 주민들의 불이익을 보전해주고 공원용지도 충분히 확보하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경달기자> 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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