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RA는 현재 350만명의 회원과 막대한 로비자금을 무기로 각급 선거구 득표율의 3∼5%를 좌지우지할 정도다. 자신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의원에게는 정치헌금을 주지 않는 것은 물론 경쟁 후보에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지원하는 식으로 낙선을 유도하기도 한다. 정치인들도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의료개혁정책이나 담뱃세 인상법안도 미국의사협회(AMA)와 담배업계의 로비로 역시 좌절됐다.
워싱턴은 로비스트의 천국으로 불린다. 금융가인 뉴욕의 월가(街)와 마찬가지로 미의회 행정부와 가까운 워싱턴 노스웨스트의 K스트리트에는 로비스트 사무실이나 법률회사 이익단체 등이 대거 밀집해 있다. 미의회에 등록된 로비스트는 99년말 현재 8134명, 이들을 고용한 고객은 1만2654명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실제 로비스트 수는 10만명에 이른다는 추산이다. ‘K가(街) 산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로비스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기 때문에 상원 하원에 이어 ‘제3원(院)’으로도 불린다. 로비의 역사는 미국정치의 역사라고 할 만큼 정치와 연관이 깊다. 최초의 로비는 1800년대초 ‘필라델피아 전국산업진흥회’가 언론인들을 고용해 미합중국은행 설립 인가를 받기 위해 활동한 것을 꼽는다. 로비스트란 말은 1830년대 특정 개인이나 이익집단으로부터 자기들만의 이해를 입법 및 정책결정에 관철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은 사람들이 연방의회와 주의회의 의사당 로비에서 서성거린데서 연유했다.
미국에서 로비활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하나로 존중받는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미국 연방의회는 언론 및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국민이 평화로운 집회를 하거나 억울한 일의 시정을 정부에 청원하는 권리를 침해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로비활동을 곧 청원권으로 보며 로비를 하지 않으면 손해 본다는 인식이 보편화돼 있다.
로비를 둘러싼 부패 비리를 막기 위해 1946년 제정된 ‘연방로비규제법(FRLA)’은 본질적으로 규제법이라기보다 ‘로비 양성화’를 유도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법도 허점이 많아 95년 ‘로비명세법(LDA)’을 제정해 6개월간 5000달러 이상을 받은 로비스트, 2만달러 이상 수임한 로비회사 등은 등록을 의무화하는 등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로비스트는 업무시간의 20% 이상을 로비에 사용해야 하고 사무실위치 고객신원 로비보수 계약기간 접촉여부 등을 1년에 두차례 신고해야 한다. 뇌물스캔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이처럼 투명성을 강화한 까다로운 규정 때문이다.
로비스트는 의원 관료 보좌관 변호사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의회나 행정부의 입법 및 정책진행 과정을 훤히 꿰뚫고 있고 의원 고위관리들과는 ‘퍼스트 네임’을 부를 정도의 친분 관계를 유지한다.
전직 의원이나 고위관리가 자리를 그만두고 로비스트로 변신해 옛동료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회전문(revolving door) 현상’의 부작용이 지적돼 퇴임후 1년간 로비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전직 의원들은 정보수집이나 유명인사 접촉에 유리한데다 입법과정 등에 정통하기 때문에 수백만달러의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하기도 한다. 대응정치센터(CRP) 조사에 따르면 전직 의원출신 로비스트가 138명이나 되고 과거 공화 민주당의 원내총무로 맞수였던 밥 돌과 조지 미첼은 버너 리퍼트사(社)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대형 법률회사나 로비회사는 막강한 자금력과 유력 인사를 내세워 로비대상 선정, 접근방법, 여론조성 등에서 전문화된 로비를 하고 있다. 900여명의 변호사와 로비스트를 거느린 법률회사인 애킨 검프에는 ‘로비계 대부’ 로버트 스트라우스를 비롯해 클린턴 행정부의 정권인수위원장 버넌 조던, 레이건대통령 시절 백악관 참모 프랭크 도나텔리, 공화당 의원출신 빌 팩슨 등 거물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존슨 등 역대 대통령들의 자문을 맡았던 스트라우스(81)는 “60, 70년대만 하더라도 로비가 개인적 친분 등에 크게 의존했지만 지금은 인터넷 등에 모든 정보가 공개되기 때문에 조직화된 비즈니스로 질적 발전을 하고 있다”며 “로비의 내용을 상대방에게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득시키느냐가 성공의 열쇠”라고 말했다.
이익단체들이 로비에 쏟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필립모리스가 담배소송 저지에 362만달러 등 2300만달러를 쓴 것을 비롯해 이익단체들이 98년 한해 14억2000만달러를 사용했다. 이는 97년 12억6000만달러보다 13%나 늘어나는 등 증가추세다. 캐시디 1989만달러, 버너 리퍼트 1877만달러, 애킨 검프 1180만달러 등 로비(법률)회사들도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외국정부나 기업 등을 위해 일하는 로비스트는 법무부에 등록해야 한다. 통상문제가 중요해지면서 각국은 대미 로비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로비단체로 등록된 것은 16개로 일본 70개, 대만 28개에 비해 크게 뒤진다. 이스라엘의 대미 로비는 각료 임명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 대만은 80년대 중반부터 중진의원은 물론 보좌관 등 실무급에 대한 끈끈한 대의회 로비관계를 유지했다. 이 덕분에 95년 행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리덩후이(李登輝)총통의 방미를 성사시킨 것은 로비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에 반해 한국은 70년대 ‘코리아 게이트’의 영향으로 활동이 위축된 탓도 있지만 통상관계자 및 기업체의 로비는 초보수준이란 지적이다.
애킨 검프의 김석한(金碩漢)변호사는 “한국기업들이 미국 실정을 모르고 한물간 인사들에게 로비를 맡겼다가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며 “정권교체가 가능한 점을 감안해 여야 정당을 장기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고 국가 이미지를 좋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식 로비제도의 도입에 대해 아직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국내 시민단체들은 로비법 도입 이전에 부패방지법 제정 등 반부패환경 조성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참여연대 이태호(李泰鎬)시민감시국장은 “98년 국회의원 244명으로부터 부패방지법안 찬성서명을 받았는데도 법안 내용도 변질되고 통과조차 되지 않았다”며 “상임위 기록표결제 및 속기록작성 의무화 등을 통해 의원들의 정책 소신을 유권자에 알려야 하며 낙천운동도 로비활동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고려대 행정학과 함성득(咸成得)교수는 “미국의 로비제도는 정책결정과 이익갈등의 공론화를 통해 부정부패를 막자는 취지”라며 “정책중심의 공청회제도를 활성화해 전문가들이 소신있게 주장을 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인철기자>inchul@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