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사이버 세기와 민족감정

  • 입력 2000년 1월 30일 19시 36분


세계가 손바닥처럼 좁아지고 주식가격이 동시에 춤을 춘다. 뉴욕 도쿄 서울의 주식 시황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그린스펀의장의 금리에 관한 한마디가 런던이나 여의도 주가에 바로 그날 투영된다. 컴퓨터 인터넷으로 압축된 세계화의 단면이다. 돈과 정보가 시차 없이 흐르는 무(無)국경 시대. 그러면 나라와 민족이 국경을 마주하고 대치하며 감정갈등이나 무력충돌을 벌이던 일도 사라지는 것일까.

▷아편전쟁은 150년도 넘는 역사 속의 사건이다. 영국이 인도산 아편으로 중국인들을 몽롱하게 만들고 대륙경제를 휘청거리게 했다. 중국의 반발로 전쟁이 벌어졌으나 함포등 무력에서 앞서는 영국의 압승. 중국은 홍콩을 떼어주고 상하이 등 5개항을 여는 치욕의 강화를 맺어야 했다. 그런 역사 속의 부끄러움이 요즘들어 한 서양 향수(香水)업자의 타격으로 이어진다. ‘오피엄’(아편)이라는 상표의 향수업자 얘기다.

▷중국이 최근 자국 내에서의 오피엄 상표 등록을 금지시켰다. 현지 소비자단체가 아편전쟁의 ‘악몽’을 연상케 하는 이 이름의 향수를 팔지 못하게 하라고 아우성쳤기 때문이다. 향수메이커 이브생로랑측의 중국사업대행자는 기자회견을 통해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앞둔 중국에 걸맞지 않은 유감스러운 조처”라고 반발했지만 속수무책이다. 아편전쟁으로 빼앗겼던 홍콩이 중국에 귀속됐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건만 중국인의 원한은 사소한 향수병에 대한 분풀이로 타오르는 것이다.

▷일본 우익의 ‘중국 난징 학살은 없었다’는 데모도 ‘사이버’ 세기에 대조적인 풍경이다. 백과사전에도 일본군의 학살로 수만명의 중국인이 희생되었다고 적혀 있는 판에 그런 생떼냐는 비판들이다. 이것이 또 엉뚱하게 중국인을 자극한 것일까. 최근 일본 관청의 해킹 피해가 잇달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한 홈페이지가 대일(對日) ‘사이버 총공격’을 촉구했다. 일본 운수성에 침입한 해커를 추적하니 중국의 홈페이지가 나오고 그 개설자는 “일본이 또 시치미를 뗐다. 컴퓨터로 일본열도를 융단폭격하자”고 궐기를 촉구했다. ‘넷 문명’은 정보와 돈의 국경을 허물고 있다. 그러나 민족감정 같은 ‘마음의 장벽’은 어쩌지 못하는 것인가.

<김충식 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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