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전문지 ‘월간 바둑’ 2월호가 프로 기사 30명, 바둑평론가 10인 등 50명에게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위는 ‘반상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으로 불리는 우칭위엔(吳淸源) 9단과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9단의 ‘신포석 창안’이었다. 이들은 1930년대 초반 4선위주의 포석, 화점과 3·三의 발견, 세력중심의 사고 등 이전 구포석과는 구별되는 착상을 발표해 바둑의 개화기를 열었다. 70여년이 지난 뒤에도 신포석의 연장선에서 돌이 놓여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
▼ 혼인보, 타이틀전 첫 도입 ▼
2위는 현대 기전의 효시인 1939년 일본 혼인보(本因坊)전의 창설.
이에 앞서 마지막 세습 혼인보 슈사이(秀哉)는 “혼인보의 명의(名義)를 한 가문의 사유가 아니라 일본기원에 제공한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400여년간 특정 가문을 통해 이어지던 바둑은 타이틀을 걸고 경쟁하는 현재의 틀로 바뀌게 된다.
88년 잉창치(應昌期)배 창설과 94년 한국 바둑의 세계 4대기전 제패(잉창치배, 후지스배, 진로배, 동양증권배)가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했다. 잉창치배 창설은 그동안 한국 중국 일본 등 국가내 기전으로 치러지던 바둑의 세계화를 열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 94년 한국바둑 최강자로 ▼
또 94년 한국의 4대기전 제패는 잉창치배 1회때 조훈현 9단 한명만 초청될 정도로 인정받지 못했던 한국 바둑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이밖에 5위에서 10위까지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⑤1924년 일본기원 창립
⑥1945년 한국기원의 모태인 한성기원 창립
⑦1930년대 ‘덤’제도의 채택
⑧95년 한국 바둑TV 개국
⑨97년 바둑학과 개설(명지대)
⑩사이버 바둑의 등장.
이 조사에서는 한국의 바둑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과거 바둑이 일본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는 점 등 때문에 일본, 한국과 관련된 사건들이 대거 선정됐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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