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겉과 속이 이렇게 달라서야

  • 입력 2000년 2월 2일 19시 10분


민주당 소속 두 정치 신인의 ‘분노와 좌절’은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6대 총선 민주당 조직책을 신청한 어느 신인 정치인은 그동안 자신이 벌여야 했던 ‘공천 줄대기’를 뉘우치면서 여권의 ‘밀실 공천’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다른 재야출신의 정치 신인은 ‘선거법 줄타기’를 자책하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치개혁과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겠다며 정치에 뛰어들었는데 실제로는 현행법을 넘나드는 줄타기나 해야 했으니 차라리 물러나 본래의 뜻이나마 지키겠다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두 경우 모두 정치 신인이 넘기 힘든 ‘현실 정치의 벽’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갔을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집권여당 총재이기도 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지지 옹호했다. 시민단체가 현행법을 어겨 가면서까지 낙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하는 것은 그를 통해 ‘구태 정치’를 개혁해 보자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그런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정작 김대통령이 총재로 있는 민주당에 공천 신청을 한 정치 신인은 여당의 ‘비민주적 밀실 공천’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정치 개혁의 요건인 공천의 민주화는 말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겉으로는 정치 개혁이요, 속으로는 여전히 구태 정치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또 이렇게 여권의 겉과 속이 달라서야 아무리 시민단체가 나선들 정치 개혁은커녕 고작 정치인 몇 명의 얼굴만 바꾸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민주당 공천심사특위는 며칠 전 공천기준에 ‘당 발전 기여도’를 추가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른바 ‘애당심(愛黨心)’을 공천에 참고한다는 것이다. 물론 당원이 애당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요구랄 수 있다. 문제는 ‘애당심’의 잣대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지극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이 잣대가 자칫 사실상의 공천권자인 총재에 대한 ‘충성도’로 매겨지지 않을까 하는 소리마저 들린다. 행여 그럴 소지가 있다면 이 또한 정치 개혁과는 멀어도 너무 먼 얘기일 뿐이다.

여권 실세라는 동교동계 인사들이 청와대와 민주당으로 이어지는 여권 핵심부를 장악하면서 정당 민주화에 역행하는 여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도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의 우려’를 깊게 한다. 인사 잡음도 그렇지만 당장 이들이 총선 공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공천 개혁 없이 정치 개혁을 말해선 안 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