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에서는 관료주도체제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지향점은 ‘작은 정부, 강한 시민’이다. ‘상명하달’의 구조로는 국가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무조건 따르는 ‘민초’가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반대도 할 수 있는 건전한 ‘국민’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중앙부처 축소 △지방분권 강화 △비영리단체(NPO) 활동촉진 △정보공개활성화 등을 위한 각종 법률제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자체로 권한 넘겨▼
일본의 중앙부처는 현재의 1부 21개 성청(省廳)에서 내년 1월에는 1부 12개 성청으로 대폭 줄어든다. 현재 54만4000여명인 국가공무원 가운데 25%인 13만6000여명이 향후 10년 동안에 줄어든다. 성청 개편이나 공무원감축만으로는 관료의 권한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사토 고지(佐藤幸治) 교토대교수는 “성청개편은 메이지시대 이후 각자의 ‘고객’을 끌어안고 독립왕국처럼 행동해온 성청 할거체제와 결별하는 첫 걸음”이라고 평가한다.
줄어드는 중앙부처의 권한은 지자체로 넘어간다. 일본은 지난해 7월 ‘지방분권정비법’을 만들었다. 이는 지금까지 ‘상하주종’관계였던 국가와 지자체의 관계를 ‘대등협력’관계로 만들기 위해 475개의 관련법률을 개정해 새로 만든 일괄법이다. 지금까지 광역자치단체인 도도부현(都道府縣)사무의 80%, 기초자치단체인 시정촌(市町村)사무의 40%는 국가위임사무였다. 그러나 이 법으로 국가위임사무의 55%가 지자체의 권한과 책임에 속하는 ‘자치사무’로 바뀌었다.
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NPO법)제정은 1995년1월의 고베(神戶)대지진이 계기로 작용했다. 피해자의 피부에 와닿는 지원활동을 한 것은 정부보다 NPO가 먼저였다. 정부는 NPO육성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 법은 98년12월에 시행됐다.
지난해 7월 현재 394개 단체가 NPO법인으로 공인받아 보건 복지 의료 사회교육 환경보호 마을재건 등의 분야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NPO의원연맹을 발족시킨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자민당 전간사장은 “관료의 발상보다 훨씬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NPO가 많다”고 평가한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민주당대표는 “법안작성에도 시민단체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NPO의 힘이 커지고 있다.
다만 지자체 권한과 NPO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재정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지자체 지원책으로는 지방세 신설, 과세권 확대, 지방채 발행조건 완화가 쟁점으로 올라 있다. NPO를 위해서는 활동비를 면세해줘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앞으로 정부를 감시하는데 시민단체가 활용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가 ‘정보공개법’이다. 지난해 5월 제정된 이 법은 내년에 시행된다. 현재 시행령이 마련되고 있다. 정보공개대상은 중앙부처 전부다. 요구를 받은 정보를 공개할 것인 지의 여부는 중앙부처가 결정하지만 거부당하면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이 법 제정움직임은 1976년에 터진 록히드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시민들의 부단한 투쟁에 무릎을 꿇고 이미 조례로 정보공개를 보장한 지자체도 많다. 자치단체장의 접대비나 판공비가 공개되고 출장소 등의 공금횡령 등이 표면화된 것도 바로 시민들이 정보공개 요구과정에서 얻은 결실이다.
이제 더 이상 ‘관존민비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훈장제도의 개정 움직임이다. 훈장제도 개정에는 집권 자민당이 앞장서고 있다. 훈포장에 등급을 두는 것은 관료적 발상이며 지금까지의 서훈자가 지방보다 중앙정부, 일반인보다는 관료에 압도적으로 많다는 반성에서 나온 움직임이다.
▼原電등 주민투표로 결정▼
제1야당 민주당의 예비내각은 최근 ‘주민투표 법제화’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댐이나 소각장, 원자력발전소나 군기지 건설 등 중앙정부의 결정을 주민투표에 부치는 경우가 많다. 찬반비율이 확실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민심의 소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투표의 법적 근거나 효력은 전혀 없다. 이에 착안한 것이 ‘주민투표 법제화’다. 주민투표에 부칠 만한 사항의 선정기준을 정하고 주민투표의 결과를 중앙정부의 정책에 반영토록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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