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고교 등급제는 언뜻 타당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제도는 지난 30년 가까이 유지되어온 평준화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실시되면 대체로 농어촌 지역 학생들이 대도시 학생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또 같은 대도시라 하더라도 지역별로 다른 기준을 적용받게 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같은 서울에서도 강남 학생이냐, 강북 학생이냐에 따라 점수 차가 날 수 있는 것이다.
평준화 정책은 줄곧 ‘하향평준화’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이 정책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거주 지역이나 출신 학교로 인해 입시경쟁에서 불이익을 받지 못하게 하는 대원칙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기회 균등’이라는 평준화 정책의 강점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러나 고교 등급제는 이런 원칙을 단번에 무너뜨릴 것이다. 아울러 너도나도 내신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명문고를 찾아나서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8학군병이라든지 대도시 인구집중 등의 부작용이 다시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것이 평준화 정책 이전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게 무엇인가. 고교 등급제 확산은 곧바로 평준화 정책의 효력 상실을 의미한다.
이들 대학이 뽑으려는 ‘우수 학생’의 개념에 대해서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요즘도 입시에서 합격을 좌우하는 것은 수능성적이다. 수능성적은 해당 학생이 갖고 있는 능력의 일부를 보여줄 뿐이다. 농촌 학생이 도시학생보다 수능점수에서 떨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적성이나 발전가능성이 부족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와 농촌간 교육환경과 경제여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여기에 내신성적까지 과거 입시에서 합격생을 많이 배출한 대도시의 명문학교 출신 학생에게 가산점을 준다면 그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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