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중간광고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한국 방송의 ‘필수’ 사항이다. 방송에서 광고를 아예 거부한다면 몰라도, 프로그램 광고가 있는 현실에서 중간광고도 당연히 허용되어야 한다.
방송과 시청자와 광고는 서로 공존 관계이다. 광고주는 돈을 대고, 방송사는 그 재원으로 방송이란 그릇에 정보와 오락을 담아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시청자는 다양한 정보와 오락을 무료로 이용하는 대신 광고를 보아주는 것이다. 따라서 광고 효과를 높여주기 위한 배려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 한 곳에 수십개씩 몰아버리는 광고는 효과를 떨어뜨리고 시청자는 실제보다 광고가 더 많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를 분산시키자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경직성이 참으로 안타깝다.
중간광고를 반대하는 논지는 대개 세 가지다. 중간광고가 소비자 주권, 즉 시청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전파의 공공성과 방송의 공익성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청률 경쟁을 부추긴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광고에 대한 부정적 사고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이제는 광고에 대해서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본다.
먼저 소비자의 주권에 대해 생각해 보자. 방송의 소비자는 누구인가. 시청자만이 방송의 소비자인가. 소비자의 정의가 ‘물건을 소비하는 사람’이라고 할 때 광고주도 엄연한 방송의 소비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주의 주권은 늘 여론을 등에 업고 무시됐다. 이제 소비자이면서도 권리가 무시된 광고주의 주권도 존중되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시청자들이 그들의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다만 소비자 주권 행사의 대상인 방송을 존재하도록 돈을 대는 것이 광고임을 생각할 때 시청자와 광고주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이며 상대를 서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광고와 전파의 공공성, 방송의 공익성의 관계이다. 전파는 국민의 공적 자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파를 가공해 공익적인 물건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광고는 방송의 공익성을 해치는 존재가 아니다. 그와 반대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전파를 시청자들이 방송이라는 형태로 볼 수 있도록 가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즉 공익성을 창출하는 도구이다.
마지막으로 시청률 경쟁을 부추긴다는 논리에도 문제가 있다. 중간광고 때문에 지금보다 시청률 경쟁이 과열되고 방송의 질이 저하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중간광고를 이용하여 프로그램을 더욱 살릴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시청자들이 다소 불편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염려하듯 마구잡이로 프로그램을 툭툭 자르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또한 시청자들은 중간광고만큼 광고의 양이 늘어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광고의 양이 느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몰려 있는 수십개의 광고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방송에는 시청자 주권도 있지만 방송사의 주권도 있고 당연히 광고주의 주권도 있다. 이 모든 방송 관련자의 주권이 똑같이 존중돼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만이라도 마음을 열고 생각해 본다면 서로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는 문제이다.
중간광고는 27년 전 정부가 방송 내용의 세부지침까지 시달하던 유신시대에 중단됐다. 이제는 마땅히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박효신(한국광고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