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버림받은 개혁법안들

  • 입력 2000년 2월 9일 20시 01분


9일 오전 1시. 제210회 임시국회가 선거법개정안 등 정치개혁관련법 처리를 끝으로 폐회되자 대부분의 의원들은 일제히 지역구로 향했다. 국회 의원회관은 텅 비었으며 아예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근 의원도 상당수였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한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날 임시국회가 폐회되면서 통신비밀보호법개정안, 인권법안, 부정부패방지법안 등 상당수 개혁법안은 사실상 자동 폐기됐다. 과거의 예로 볼 때 4월13일 총선을 통해 제16대 국회가 개원되기 전까지 국회가 다시 열릴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9일 현재 계류 중인 법안은 총 389건. 이 중에는 조속히 통과되지 않으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특히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의 경우 여야 모두 2년 넘게 국정감사 때마다 도청 감청의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입법을 추진했던 법안이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인권법안도 인권위의 법적 성격에 대한 법무부와 인권단체의 이견 때문에 여전히 묶여 있다. 이처럼 출발은 화려했으나 도중에 흐지부지 처리된 법안 리스트는 국회 곳곳에 널려 있다.

내부고발자보호제도 도입을 위한 부정부패방지법, 동성동본 금혼(禁婚)규정 삭제를 주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안, 소액주주의 집단소송 보장을 골자로 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안 등등.

이들 법안들은 16대 국회가 구성되더라도 신속히 통과된다는 보장이 없다. 왜냐하면 각 상임위에 새로 배치되는 의원들이 또 다시 원점에서 법안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권은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그러나 이날 여야 어느 당을 막론하고 개혁입법처리 무산에 대해 “죄송하다”는 유감 논평을 낸 당은 없었다.중앙당은 총선전략 세우기에 바빴고 의원들은 고향으로 떠나기에 바빴을 뿐이다.

공종식<정치부>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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