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官治금리엔 한계있다.

  • 입력 2000년 2월 10일 19시 53분


금융통화위원회가 단기금리인 콜금리를 4.75%에서 0.25%포인트 인상한 것은 왜곡된 금리체계를 다소나마 개선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본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금융시장 안정이란 명분 아래 작년 4월 이후 단기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어왔다. 금통위는 내부적으로는 이미 작년 9월부터 인플레를 우려했으면서도 재경부와 금감위의 이 같은 압력을 뿌리치지 못해온 게 사실이다. 결국 콜금리 동결이 장기금리의 하락을 유도하기는커녕 장기금리의 상승에 따른 장단기금리차 확대를 유발했다. 이는 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와 인플레 기대심리를 촉진해 금리정책의 유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빚었다.

그럼에도 재경부와 금감위는 단기금리를 인상하기보다는 장기금리를 낮춰 장단기금리차를 줄인다는 입장을 고집했다. 6일엔 이헌재(李憲宰)재경부장관의 지시로 대우채(大宇債) 환매관련 금융시장대책을 설명한 금감위측이 콜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이는 금리조정에 관한 금통위의 고유권한을 명백하게 침해한 행위였다. 이에 대해 금통위 의장인 전철환(全哲煥)한국은행총재를 비롯한 금통위원들과 한은측이 강한 반발을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10일 금통위의 콜금리 인상결정은 이 같은 경위를 거쳐 이루어졌다.

물론 우리 경제의 건전화를 위해서는 저금리 저물가 기조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스럽다. 또 당장의 현실로 금리가 상승하면 정부에 의해 대우채를 강제로 떠안은 금융기관들의 손실이 커지고 금융시장 불안이 재연될 소지도 있다. 하지만 재경부장관이 적정금리(3년만기 회사채 수익률) 수준은 8.5%라고 아예 목표를 밝히고 ‘모두 따르라’는 듯이 밀어붙이는 접근방식은 적잖은 무리와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 지금 정부가 저금리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은 구조조정 및 경기(景氣) 대책 등에서 인위적 관치(官治) 저금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운용을 해온 데 따른 자승자박이기도 하다.

정부가 10일의 금통위 회의를 앞두고 최근 며칠간 콜금리 인상논의를 봉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데는 또 다른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요컨대 4월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이 깔려 있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설혹 금리인상을 통제해 총선때까지 시장분위기를 띄우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본다고 해서 이를 경제운용의 잣대로 삼는다면 지극히 위험하다. 그러잖아도 총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이 쏟아내는 선심성 정책 때문에 재정수요가 팽창하고 있어 총선 후가 걱정인 상황이다. 돈은 풀고 금리는 묶으려 하면서 “물가불안심리가 사라지지 않는 게 문제”라고 뒤집어 말하는 경제팀의 태도는 무책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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