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심영희/새정치, 여성들이 나설때

  • 입력 2000년 2월 10일 19시 53분


비례대표 의원후보 30% 여성 할당제를 담은 정당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여성계의 숙원이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아 기적처럼 이루어진 것이다. 여성후보를 알리고 지원하려는 여성운동 단체들도 생겨났다. 이번 총선에는 한국 선거사상 지역구 출마를 희망하는 여성후보가 가장 많다고 한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지극히 저조하고 어려운 나라에서 새로운 현상이며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공천을 받을 수 있을까? 또 공천을 받는다 해도 당선이 될 수 있을까? 비례대표 후보는 정당법 개정안대로 의무적으로 30%를 여성에게 할당해야 하지만 지역구의 경우 현재 상황에서는 여건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여성의원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시민들, 특히 여성유권자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수적이다. 왜 여성의 정치참여가 늘어나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정치판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이다. 대부분 국민이 잘 알고 있다시피 국회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겪고서도 아직 정신차리지 못하고 개혁의 발목을 잡고 온갖 민생법안을 뒷전에 미뤄둔 채 당리당략에 매달려 있다. 정치권은 비합리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지역감정 부추기기, 돈정치, 연줄정치 등으로 비판을 받은 지 오래다.

이런 정치판 바꾸기를 위해서는 우선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데 기대를 걸 수 있는 후보는 젊은 세대와 여성들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민주적이고 개혁적이고 도덕적이며 지각력이 있다고 한다. 여성들이 보다 억압을 받고 살아 약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를 보면 지방의회 여성의원들의 경우 대부분이 적극성과 성실성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여성후보 할당제는 기존 정치판에 대한 ‘끼어들기’에 그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여성후보들은 단순히 ‘끼어들기’에 만족하지 않고 기존 정치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넘어설 수 있는 ‘틀바꾸기’ 내지 ‘새판짜기’의 새로운 정치모델을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성후보들이 정치권에 보다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정치권에서는 보다 많은 여성들을 공천하도록 하고 이들을 당선가능한 지역에 우선 공천해야 할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모든 선거에서 여성을 50%이상 공천하도록 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 특히 여성유권자들이 의식을 바꾸는 것이다. 지역감정에 따라 투표하는 것은 더 이상 안 된다. 여성 후보라고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더 이상 안 된다. 개혁성 전문성 도덕성 등의 기준에 따라 후보를 평가하고 정치를 바꿀 수 있는 여성후보에게 투표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정치에 대한 여성의 관심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90년대 치러진 각종 선거를 분석한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의 투표성향이 탈보수적이고 인물 위주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선거와 같은 정치적 의사결정에서도 자신의 판단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여성의 정치참여에 긍정적이었고, 실제로 높은 비율의 여성이 여성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핀란드에서는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고 일본에서는 여성지사가 선출되었으며 미국에서는 대통령 부인 힐러리 클린턴 여사가 뉴욕주 상원의원 출마를 선언하고 열심히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타고 한국 총선에서도 여성정치의 바람이 거세게 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여성유권자들이 여성후보들에게 관심과 지지를 보냄으로써 정치판을 바꾸고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된 것 같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려는 마음과 정성으로 격려의 편지를 쓰고, 지원금을 보내고, 그리고 투표장에 나가서 여성의 힘을 보여야 할 때이다. 여성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심영희(한양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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