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씨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혐의로 고발돼 법원에서 벌금 5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J사 부도로 손해를 본 일반투자자들은 “내부정보를 이용해 5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데 비해 처벌이 너무 가볍다”며 반발했다.
C사의 K사장도 마찬가지. K씨는 회사가 부도나기 직전 부인 명의의 계좌에 있던 주식 4만주를 매도해 3억원을 건졌다. 그렇지만 K씨는 부당이득금의 30분의 1에 불과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대주주들이 부도 직전에 내다판 주식을 사들인 누군가는 큰 손해를 본 셈이다.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처벌은 부당이득금의 10%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벌금뿐이었다.
증권거래법 207조는 이같이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에 대해 3배 이내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J씨와 K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3배까지 벌금을 부과하는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없었다.
만약 이들이 미국에서 내부정보를 이용해 이같은 짓을 하다가 적발됐다면 어떻게 될까.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미 증권관련법은 내부 정보를 이용해 얻은 부당이득금 전액을 환수하고 이득금의 3배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J씨나 K씨가 미국에서 내부자거래를 했더라면 이득금 전액을 몰수당하는 것은 물론 벌금까지 냈을 것이다.
실제로 1월4일 내부 정보를 이용한 혐의로 고소된 도쿄-미쓰비시은행 뉴욕지점의 전임원 리처드 페렌스(52)는 부당이득금 전액 및 이득금 100%에 해당하는 벌금과 징역 21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투자은행인 살로먼 스미스 바니의 친구가 알려준 인수합병(M&A)정보를 이용해 관련 회사 주식을 합병발표 직전에 사두는 수법으로 103만달러(약 11억5772만원)를 벌었다. 따라서 그는 부당이득금 103만달러를 전액 반납하고 벌금 103만달러를 납부해야 한다. 103만달러를 부당하게 벌어들인 대가로 206만달러(약 23억1544만원)를 토해낸 셈이다.
또 살로먼이 개입했던 M&A에 관한 정보를 페렌스에게 제공하면서 몰래 주식을 샀던 살로먼 스미스 바니의 애널리스트는 부당이득금 19만달러 전액과 벌금 5만달러를 선고받았다. 미국은 증권사 직원들의 주식투자를 허용하고 있지만 이처럼 업무와 관련된 정보로 주식투자를 하면 내부자거래로 다뤄 엄격히 처벌한다.
주식투자를 허용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증권사 임직원의 주식투자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상당수 국내 증권사 직원들은 차명계좌를 이용해 공공연히 주식에 투자하는 형편이어서 주식투자금지 조항은 유명무실한 실정. 대주주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내부자거래를 할 때는 흔히 증권사 직원이 약방의 감초처럼 동원된다.
일부 증권사 임직원들은 업무와 관련된 미공개 정보로 주식을 사고 팔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같은 부당거래를 하다가 적발된 증권 관계자는 거의 없다.
증권사 직원들은 기업탐방 과정에서 획득한 신제품 개발정보를 주로 애용한다. 때문에 증시에서는 어떤 신제품이 개발됐다는 사실이 발표되기 한참 전에 주가가 치솟는다. 그러다가 신제품 발표사실을 공식 발표하는 날에는 주가가 오히려 하락하는 경우가 잦다. 이미 증시에 알려져 주가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증시에서는 ‘소문에 사고 정보에 팔아라’는 투자 격언이 금과옥조처럼 전해진다.
국내에서 내부자거래가 끊이지 않는 것은 기업의 정보가 외부에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원인이 크다. 즉 내부자는 외부인이 알지 못하는 많은 정보를 이용해 언제든지 부당 이익을 취할 기회가 널려 있는 것이다.
일례로 국내 상장사들은 위험 요소를 공개하기를 극히 꺼린다. 가령 앞으로 시장 상황이 바뀌면 회사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등 자세한 위험요소를 공개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이러한 기업풍토 때문에 특정 회사가 발표하는 장밋빛 전망만 믿고 주식을 샀다가 낭패를 보는 투자자들이 주위에 널려 있다.
미국은 ‘정보 평등주의’를 철저히 고수한다. 기업 내부 관계자와 외부의 일반투자자가 정보를 동등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외국인이 주요 주주로 있는 국내 기업이 코스닥시장 등록을 앞두고 있을 때의 일이다. 등록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에 제출할 사업계획서를 한국 변호사들이 작성해 외국인 주주에게 제출했다. 변호사들은 그 업체의 문제점을 얼버무렸다. 그러자 그 외국인 주주는 즉각 연필을 집어들고 그 업체의 문제점을 정확히 적었다.
변호사들이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고 만류했지만 그 주주는 막무가내였다. 그는 “만약 소액주주들이 엉터리 사업계획서를 믿고 투자했다가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변호사들은 그의 의견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회사의 주요 문제점을 상세하게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에 참여했던 변호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라고 토로했다.
증권시장에서 투자의 승패는 정보에 의해 좌우된다. 1분 1초라도 유용한 정보를 먼저 선점한 사람이 투자에서도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회사 내부정보에 정통하지 못한 일반투자자들로서는 증권시장의 루머나 거래 현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반투자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이른바 ‘작전세력’을 동원한 주가조작이 판을 치기도 한다. 근거 없는 소문을 유포한다든지,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고가주문을 내거나 허위주문을 내 거래가 성황을 이루는 것처럼 일반투자자들을 오인시켜 시세차익을 챙기는 것이 전형적인 수법이다.
지난해부터 국내에서도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에 대해 종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엄격히 처벌하기 시작했다. 특히 검찰은 지난해 신명수(申明秀) 신동방 회장과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회장을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하기도 했다. 취재 과정에서 획득한 정보를 동생에게 제공했던 모 언론사 기자도 불구속 기소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난해는 불공정거래에 대한 일대 전환기였다”며 “종전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문제들이 앞으로는 엄격히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내부자거래 적발건수 4년새 6배 늘어 ▼
최근 들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거래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996년 4건에 불과했던 내부자거래는 지난해 28건으로 늘어났다. 98년 19건에 비해서도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와 함께 시세조종도 증가 추세를 보인다. 시세조종은 △96년 18건 △97년 21건 △98년 27건 △지난해 31건으로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각종 불공정거래가 고도로 지능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실제로 적발되지 않은 불공정거래는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내부자거래의 경우 과거에는 유무상 증자 관련 정보를 이용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부도발생 △신기술 개발 △인수합병(M&A) △자사주 취득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내부자거래에 동원되는 계좌는 주로 남의 이름으로 된 차명계좌. 증권감독 당국은 차명계좌를 이용한 내부자거래를 적발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회사의 기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대주주나 임원들은 주식 매매 사항을 일일이 금융감독원에 신고해야 하는 만큼 자기 이름으로 된 계좌를 이용해서는 절대 불공정 거래를 하지 않는다. 대주주들은 주로 친인척이나 믿을 수 있는 임원 명의로 주식을 위장분산하는 수법을 즐겨 쓰고 있다.
증권사 직원과 대주주, 임원이 조직적으로 결탁해 시세 조종에 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증시에 밝은 증권사 관계자가 끼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의 고위 관계자 단독으로는 주가를 조작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악어와 악어새’의 공범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 전문가 의견 ▼
주가조작 행위는 불특정 다수를 피해자로 만드는 ‘사기행위’에 해당된다. 증권시장이 발달한 국가에서는 이러한 증권 사기행위에 대해 법률적으로 강력한 규제를 한다.
우리 증권거래법도 시세조정 행위와 같은 불공정행위를 유형화해 민형사상 제재를 가한다. 그러나 주가조작 행위에 대하여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금지규정을 두고 있는 미국 증권거래법과 달리 개별적 금지규정만을 둬 규제 측면에서 미흡한 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검토를 거쳐 실무적으로 구체적인 주가조작 행위를 한건도 빠짐없이 찾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일반 투자가들도 근거 없는 소문이나 일시적인 거래 현황에 현혹되지 않는 분석적이고 장기적인 투자 자세가 요구된다.
신희강 <법무법인 태평양 기업구조조정팀 변호사>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