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의 논란은 어느덧 해마다 철마다 떠오르는 전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따지고 보면 100년을 넘긴 우리 근대사법사는 사법개혁의 진행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최근 10년간은 그것이 뜨거운 쟁점으로 달아올랐다. 사회의 민주화로 국민의 법치주의적 감수성이 급격히 성숙하였고, 반면 권위적 관행을 즐기는 법조계는 그 흐름에 제대로 발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급속한 사회변화에 융통성을 가지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새 시대에 맞는 밑그림을 제시하겠다는 대법원의 포부는 분명 때늦은 것이다. 그러나 환영한다. 서로가 늦었다는 것을 인식할수록 실현 의지는 밀도가 충실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므로.
▼ 대법원 새 발전案 평가할 만 ▼
이번의 21세기 사법발전계획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그동안 사법부로부터 홀대를 당했다고 느끼는 주권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대부분의 내용이 시민단체와 재야법조계에서 요구해 온 것들이어서 부분적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반갑기도 하다.
국민을 위한 민주적 사법체계의 개혁은 크게 두 가지의 핵심적 축을 필요로 한다. 하나는 법률서비스 수요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법부 자체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먼저 대법관을 제외한 모든 판사들의 단일호봉제를 실시해 사실상 보직 개념으로 잔존하던 직급제를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계획은 사법부의 독립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승진에 눈치보지 않고 정년까지 판결에 소신을 쏟을 수 있는 틀이 마련되는 셈이다. 단독판사제의 효율성을 기하고 , 증원을 통한 법관 전문화와 조정제도의 강화 등도 격무에 시달리는 판사의 업무량을 조절하게 하여 사기를 북돋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추락한 대국민적 신뢰는 국민에 대하여 세세한 편익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회복을 꾀하는 것 같다. 일부 지원에 항소부를 설치하는 법원의 구조개편, 신속한 형사재판의 진행, 전산화 절차의 도입과 등기제도의 간소화, 변호사 없는 당사자 소송에 대한 노력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사소송에서 국선변호인 제도를 수사단계까지 넓히려는 조치는 모두가 기다리던 것이다.
당면한 문제는 이러한 계획을 어떻게 구체화시키느냐는 것이다. 당장의 우려는 그 시기가 언제일까 하는 데 모아지는데, 예산 확보를 위한 정치적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걱정스러운 것은 항상 대립적으로만 비쳐지는 법무부와의 협력이다. 검사가 보유하고 있는 증거에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쉽게 접근하려면 법령 개정에 검찰이 편의적 이기심을 발동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 刑訴法 개정등 보완 노력을 ▼
이런 모든 선결문제가 해결되고 개혁안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판사가 인사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면 법관의 인사이동과 보직이동의 문제가 제도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지역법원 또는 전문법원마다 독립적으로 판사를 임용하는 방안을 고려하면 될 것이다. 그저께 변호사와 교수 몇 사람이 신규 판사로 임용되었는데 법조일원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수사과정에 변호인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게 형사소송법 개정에 진력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를 지나치다고 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자체 개혁의 의지를 불태운다 하더라도 사법부는 칭찬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애당초 정의와 관련된 일은 그 보상을 바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작년 초 전임 대법원장은 ‘사법개혁 완결의 해’를 선언했다. 뒤이은 신임 대법원장의 21세기 계획안으로 ‘완결’이 가능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감시와 비판의 눈은 잠을 자지 않으므로 오직 남은 것은 사법부의 실행뿐이다.
차병직 <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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