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의 권위와 사회안정

  • 입력 2000년 2월 15일 19시 33분


법의 생명은 권위에 있다. 만약 법의 권위가 떨어지면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 총선을 앞둔 최근 우리 사회의 상황은 법의 권위실추가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준다. 현행법 질서를 수호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과 정부, 검찰이 법경시 풍조를 부채질한 측면도 없지 않다. 법의 권위에 대해 깊이 생각케 한 예가 시민단체들의 선거법 불복종운동과 검찰의 정형근(鄭亨根)의원 체포작전이었던 것 같다.

두 사건은 무조건 ‘법을 지키라’고만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 사회가 특수한 정치적 환경을 갖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선거법이 개정되기도 전에 시민단체들이 공천반대 명단을 공표하고 낙선운동을 시작한 것은 분명한 실정법 위반이었다.

또 선거법이 낙천 낙선운동을 일부 허용하는 선으로 개정된 뒤에도 시민단체들이 집회 가두행진 서명운동까지 전면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을 무시하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은 납득할 수 없다. 특히 선거운동기간(총선 전 16일간) 이전에는 누구도 선거운동을 할 수 없게 돼 있는데도 시민단체만이 하겠다면 이 또한 문제다.

본란은 개정된 선거법이 흡족하지는 않더라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이번에는 이 법의 범위 내에서 운영의 묘를 살려 낙천 낙선운동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본격적 개정 논의는 총선이 끝난 뒤에 벌이는 게 옳다고 강조한 바 있다. 크고 작은 단체들이 법의 한계를 넘어 너도나도 낙선운동과 사전선거운동에 끼어들면 선거판의 무질서와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총선연대가 앞으로 합법적 활동에 주력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다행이다. 또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어제 낙천 낙선운동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의 소환에도 응했다. 이런 일련의 태도는 현실적이고 현명한 선택이라 본다.

시민단체들의 정치개혁운동 취지와 공천반대 명단 공표가 이미 여론의 상당한 공감을 얻은 점을 감안하면 준법의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한편 정형근의원도 검찰에 자진 출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나라당 이회창총재도 “정의원을 정치적으로 부당하게 구속하지 않는다면 출두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정의원을 둘러싼 정쟁이 공명선거 분위기 조성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검찰도 선거를 눈앞에 둔 민감한 시점인 만큼 정의원을 조사할 때 공정한 자세와 정치적 중립을 지켜 체포작전 등에서 빚어진 ‘외부개입’ 의혹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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