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런식 공천이라면…

  • 입력 2000년 2월 15일 19시 33분


밀실, 낙하산공천과 나눠먹기, 담합공천 등 구시대 공천 병폐가 재연되고 있다. 더구나 이른바 ‘새피 후보자’들 상당수의 출마예상지역구는 아침과 저녁이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공천과정에서부터 이같은 구태와 혼란이 판을 친다면 선거를 통한 정치개혁은 이미 물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본란이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민주선거가 되려면 우선 공천이 민주적 상향식으로 이뤄져야 하고 그 과정이 유리처럼 투명해야 한다. 그런 공천이 아니면 정치개혁이나 발전은 아예 기대할 수 없다. 특히 이번에는 구태를 벗어난 새로운 공천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유권자들의 절실한 요구이며 또 새 세기를 맞이한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총선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적지 않은 공감을 사고 있는 것도 그 같은 일반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천이 거의 막바지 단계에 이른 요즈음의 정치권을 보면 그런 고려나 반성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말로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공천실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론조사 등을 통해 유권자가 바라는 인물을 과학적으로 공천하고 있다”고 하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공천은 여전히 당의 실세나 계파 실력자 몇 사람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는 듯한 분위기이다. 이 때문에 여전히 줄서기가 한창이다. 공천에 전권을 행사할 것이라던 공천심사위는 여야를 막론하고 허울 좋은 간판에 불과할 뿐 실제는 막후에서 결판이 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줄만 잘 대고 밀실만 잘 찾아다니면 유리한 공천고지에 오르는 분위기 때문에 명백한 비리혐의 등으로 시민단체가 ‘기피인물’로 지명한 사람도 이에 아랑곳없이 다시 공천유력인사로 부상한다. 그 부작용도 적지 않아 민주당의 경우에는 당초 내건 개혁성과 전문성 등 6개 공천기준은 간데 없고 신구주류니 동교동계니 하며 힘겨루기가 한창이며 한나라당은 고질적인 계파지분 문제로 내부 갈등이 심상찮은 모양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새피 후보자’들은 여러 군데 지역구를 방황하는 ‘철새 아닌 철새’가 되고 있다. 후보자들이 이처럼 보따리 장수처럼 이곳 저곳 지역구를 기웃거리는 형편이라면 진정한 대의정치는 뿌리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권이 아직도 무엇이 유권자들의 요구이고 시대의 요청인지 모른다면, 그리고 시대가 어떻게 변하고 거기에 맞는 정치행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면 다시 ‘시민저항’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그 같은 저항을 피하기 위해서도 정치권은 우선 공천구태부터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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