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듯 이곳에서도 빈민들은 쓰레기소각장 주변의 판자촌에 모여 산다. 마을 주민들의 잔뜩 때가 찌든 옷차림만 봐도 그들의 곤궁함을 쉽게 알 수 있다. 2평 정도의 작은 판잣집마다 10명 안팎의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시 당국마저 구호를 포기해버린 이 판자촌 마을에 이석운(李錫運·62)목사 등 한국인들은 너무나 고마운 이웃이다.
이목사 등이 이곳에서 처음 사랑의 손길을 내민 것은 95년. 상파울루시에서 마약 알코올 중독자 등을 상대로 목회활동을 벌이던 이목사에게 카봉보니토시 출신의 한 주의원이 이곳 판자촌 주민들을 도와줄 수 없는지 의향을 물었다.
기꺼이 판자촌 마을로 달려간 이목사는 지역 유지들과 상파울루 교민들의 지원 아래 무료급식소부터 차렸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듬해엔 시 당국에 요청해 시 소유 건물을 무상 임차해 무료탁아소도 세웠다. 아이들에게 가느다란 희망의 빛이라도 보여주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목사의 빈민구호사업은 이후 국제기아대책기구의 적극 지원으로 더욱 힘을 얻었다. 우연히 이목사의 노력을 알게 된 국제기아대책기구는 이목사를 브라질지부장으로 임명, 재정지원에 나섰고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도 이목사의 탁아소에 자원봉사자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이목사와 함께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은 현재 모두 5명. 한국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던 구연숙(具蓮淑·28·여)씨와 이미재(李美在·27·여)씨는 우연히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이목사의 일을 전해 듣고 기꺼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98년과 지난해 각각 이곳에 온 두 사람은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에 부닥치기도 했으나 이제는 부모님들이 가장 큰 후원자”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다 이곳으로 온 우경호(禹京鎬·41) 강순옥(姜順玉·38)씨 부부도 지난해 이곳의 사정을 들은 뒤 일곱 살, 열살된 두 아들을 데리고 사랑의 실천에 동참했다. 또 교회를 통해 이목사의 빈민구호사업을 전해들은 이명윤(李明潤·42·여)씨 역시 ‘바로 이 일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에 미련없이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98년 이곳에 왔다.
이들은 한결같이 “처음엔 언어와 문화차이로 고생이 컸으나 이제는 주민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이웃이 됐다는 사실에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랑의 실천에는 보이지 않는 또다른 따뜻한 손길이 있다. 바로 매달 이들을 뒤에서 지원하는 한국의 후원자들. 후원자들은 이들이 브라질로 오기 전 한국에서 함께 한 사람들로 이들의 생활비를 십시일반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목사는 “고국의 많은 사람들이 비록 직접 자원봉사에 동참하지 못하더라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후원에 적극 참여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봉보니토〓이현두기자>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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