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의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은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는 작년 6월 21세기에도 선진국으로 살아남기 위한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이름하여 ‘디지털 델타 계획’. 전 국토를 디지털 통신망으로 무장시켜 정보화시대 유럽의 델타(삼각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경상북도 크기 만한 국토를 전세계 전자 상거래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글로벌 크로싱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서유럽은 미국에 비하면 한참 늦게 인터넷에 눈을 떴다.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의 인터넷 사용자수는 전체 인구의 15%인 4700만명. 미국 전체 인구의 46%인 1억2000만명이 인터넷에 빠져 있는 것에 비하면 크게 뒤진다. 전자상거래 매출도 지난해 174억달러(약 19조3140억원)로 미국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최근 “미국 화이트칼라의 90%가 개인용컴퓨터(PC)를 쓰는 데 비해 서유럽은 55% 정도만 사용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우위를 강조하기도 했다.
1월10일 미국의 아메리카 온라인(AOL)과 타임워너의 역사적인 합병이 발표되자 유럽대륙은 발칵 뒤집혔다. 이튿날 스페인 마드리드에 EU회원국 정보기술정책 책임자들과 주요 인터넷 업체 최고경영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였다. 미국의 인터넷 세계지배가 구체화하는데 대한 우려가 이날 회동의 주제였다.
에르키 리카넨 EU정보기술 담당 집행위원은 “유럽은 전화료가 미국보다 훨씬 비싸 인터넷 보급이 늦어지고 있다”며 “먼저 전화료를 낮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스페인총리는 “유럽 각국은 인터넷에 의해 바뀐 경제환경에 적응해가려는 기업들에 가해지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참석자들의 결론은 분명했다. 정보화에 관한 한 미국보다 열세임을 인정하고 21세기 지식사회에서 유럽이 이기려면 디지털혁명을 가속화하는 길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유럽의 인터넷 보급속도가 느린 것은 아니다. 모건 스탠리의 보고서에 따르면 서유럽의 인터넷 단말기는 1995년에 100만대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650만대로 늘었다. 올해 초 앤더슨 컨설팅은 “유럽은 빠른 속도로 미국과의 디지털 격차를 따라 잡아 2002년이면 유럽 전자상거래 매출이 미국의 55%수준에 근접하고 2003년에는 유럽의 온라인 인구가 미국과 같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U집행위도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경쟁력의 원천임을 깨달았다. 작년 12월에는 인터넷 인프라 구축을 위한 ‘e유럽계획’을 발표했다. 모든 시민과 가정 학교 기업 행정조직을 디지털화하고 창의성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범유럽 디지털 사회를 건설해 진정한 유럽통합을 이룩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EU는 3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리는 특별정상회담에서 이 계획을 구체화하고 회원국별 정책 시행시한까지 정하기로 했다. 연말까지는 유럽 17개국 70개 도시를 초당 1페파(1000조)bps(초당 데이터 전송 비트수) 1페타bps(1페타bps=1000조bps)가 가능한 광케이블로 연결하는 범유럽 초고속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서유럽 인프라 실태▼
유럽연합(EU)의 인터넷 인프라 구축계획은 이동통신을 이용한 인터넷 접속에 비중을 두고 있다. 유선과 컴퓨터 등 고정환경을 통해 인터넷 접속이 이뤄지는 미국과는 다르다.
이는 유럽에서 무선 인터넷 접속이 활발하고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무선 단말기 가입자수는 1억1000만명으로 7400만명인 미국을 훨씬 앞선다. 유럽의 PC보유율이 인구의 20%에 불과하지만 휴대전화 스마트폰 PC방 등 다양한 인터넷 접속방법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스마트카드 기술을 활용한 즉석 사진 인터넷숍이 4300개나 성업 중이고 1998년 보급되기 시작한 스마트폰은 유럽 전역에 140만대나 퍼져 있다.
스웨덴의 에릭슨과 노키아는 세계 최대 무선단말기 제조업체. 영국의 보칼리스사는 E메일을 무선단말기로 받을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처음으로 개발했다. 벨기에의 러나웃-호스피사도 문자정보를 음성화하는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휴대전화와 모뎀을 통한 PCS폰과 스마트폰 WAP단말기 등은 사용자가 어느 곳에 있든 정보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분당 전송속도가 다이얼식 유선전화와 컴퓨터 결합방식에 비해 5배나 빠르다.
이에 따라 서로 다른 인터넷 이용 환경에서 미국과 유럽이 펼칠 정보화 경쟁이 당분간은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