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고인이 된 루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괴력의 비결은 뜻밖에도 야구공의 발달에서 나왔다는 게 정설이다.
루스가 데뷔하기 전인 1900년대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만 해도 야구공은 천 조각을 여러 겹 뭉친 뒤 쇠가죽이나 말가죽 조각을 꿰매 썼다. 반발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에 따라 1908년에는 샘 크로퍼드가 단 7개의 홈런으로 홈런왕에 오르는 등 한 시즌동안 10개 정도만 펜스를 넘기면 당대 최고의 슬러거로 평가받는 웃지 못할 광경이 이어졌다.
이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반발력이 있는 공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했고 마침내 1910년 고무 또는 코르크로 심을 박은 공이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고무나 코르크로 심을 박은 공은 역시 반발력이 컸다. 당시 언론에선 ‘공속에 놀란 토끼가 들어있다’고 표현할 정도. 1911년 프랭크 슐츠가 21개의 홈런 신기록을 세우는 등 메이저리그의 홈런도 두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홈런수는 더 이상 늘지 않았다. 반발력이 큰 공이 나왔지만 투수들의 기량이 날로 발전하는데다 공에 침과 흙을 묻히던 관행이 여전해 홈런수는 오히려 다시 줄어들고 있었다.
이때 ‘우리의 영웅’ 베이브 루스가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루스는 데뷔 첫 해인 1918년 11개의 홈런으로 타이틀을 차지한 뒤 이듬해 29개의 홈런을 터뜨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와 때를 맞춰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제 더 이상 투수들이 공을 더럽혀선 안된다’는 규제책을 내놓았다.
결국 루스는 1920년 54홈런, 21년에는 59홈런, 27년에는 60홈런의 이정표를 잇달아 세우며 야구가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타자들에게 다시 ‘암흑기’가 찾아왔다.
2차 세계대전으로 군수물자인 고무가 절대 부족했던 미국은 1943년 고무 대신 이와 비슷한 ‘발라타’라는 재질로 공을 만들어 시즌에 들어간 것.
더구나 ‘화끈한 공격야구’로 팬을 끌어모았던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제 ‘투수보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마운드의 높이는 올라가고 스트라이크존은 넓어지는 변화로 이어졌다.
이 결과 1943년 시즌 첫 한달간 아메리칸리그 전체의 홈런수는 2개에 불과한 해프닝이 연출됐다.
한편 방망이는 야구공만큼 큰 변화는 없었다. 방망이는 너무 크거나 길어도 스윙이 부자연스럽기 때문. 기껏해야 끝부분이 사람 팔뚝만큼 굵은 도깨비 방망이나 77㎝짜리 젓가락 방망이, 1.36㎏짜리 노지심 방망이를 일부 괴짜선수가 사용했을 정도. 이에 따라 방망이에 대해선 특별한 규제나 개발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70년에 알루미늄 방망이가 나오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댄 슈크라는 선수는 소프트볼리그에서 한해동안 199홈런을 쳐냈고 74년 대학야구에도 알루미늄 방망이가 도입되자 100여년간 쌓아온 메이저리그 기록은 한낱 휴지로 변할 위기에 빠졌다.
이에 알루미늄 방망이는 프로야구에선 절대 사용불가 방침이 내려졌고 현대야구에선 투수보호를 위해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비롯, 아마추어에서도 나무 방망이로 바꾸는 추세다.
핵무기의 개발같은 무절제한 기술경쟁이 부작용을 초래했듯이 ‘공격야구’와 ‘투수보호’의 두 명제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야구에서도 스포츠과학의 발전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선 안되는 것임에 분명하다.
<장환수기자>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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