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난장판'과 16대 총선

  • 입력 2000년 2월 22일 19시 03분


‘난장판’이란 여러 사람이 어지러이 섞여 떠들거나 뒤엉켜 뒤죽박죽이 된 곳 또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이 말의 뿌리가 된 난장(亂場)에는 세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과거(科擧)를 치르는 마당이 전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선비들로 뒤죽박죽이 되어 너나없이 떠드는 판을 말한다. 둘째, 정해진 장날 외에 특별히 열린 장이 난장이다. 그 지방과 인근의 온갖 생산물이 집산되므로 난장을 벌인 곳에서는 돈과 물자가 엄청나게 유통되었고 사기 도박 협박 폭행 등 갖가지 악행이 이곳저곳에서 횡행하였다.

▷셋째, 난장은 무허가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나 등록되지 않은 장사꾼의 상행위를 뜻하는 난전(亂廛)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허가받은 상가이자 상권인 육주비전 외에 무허가 가게가 서는 것을 ‘난장을 튼다’거나 ‘난장이 섰다’고 표현했다. 세가지 의미 모두 질서 없고 법과는 딴판인 상황을 일컫는다. 성격이 비뚤어진 사람이야 난장판이 벌어지면 구경거리가 생기고 구전도 떨어져 즐거울지 모르겠으나 보통사람에게 이건 ‘악다구니’요 ‘이판사판’의 혼돈이다. 요즘은 이런 상황을 ‘×판’이라고도 한다.

▷4·13총선을 앞두고 요즘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모습이 이 난장의 세가지 의미와 똑 닮았다. 과거를 보러 전국에서 모여든 선비의 떠드는 모습이라니 국가의사 결정기구인 국회에 들어가려고 저마다 내가 옳다며 선거를 치르겠다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 같지 않은가. 또 정당의 공천을 받고 안받고는 판을 벌이는 허가를 받았느냐 아니냐는 다툼을 연상시킨다. 그를 둘러싼 말의 폭행과 협박이 끊이지 않으니 가치의 혼돈이 심해지고 불안감마저 조성된다. 흥미로운 구경거리라고 하기에는 구정물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

▷그럼 난장판을 벌이는 사람들을 응징하는 방법은 없는가. 옛날에는 그런 이들에게 난장(亂杖)을 쳤다. 곤장으로 마구 때린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유권자들은 그저 난장판 속에서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흠이 덜 간 이들을 뽑아 국회라는 장을 세워줄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지금 선 이 난장에서 누가 사기 폭행 협박성 악행을 저지르는지를 두 눈 바로 뜨고 감시해야 한다. 그들에겐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

<민병욱 논설위원> 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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