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첫 女國手 루이]한국 스타일 '접목' 기력 상승

  • 입력 2000년 2월 22일 19시 26분


“루이나이웨이 9단의 바둑은 이미 세계 일류급이었다. 그러나 국수전 우승을 계기로 한 단계 더 올라선 것으로 평가된다.”(문용직·프로4단)

루이 9단이 도전자 결정전에서 이창호 9단을 이기고 43기 국수전 도전자로 나섰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조훈현 9단의 우세로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설마 조 9단까지야”라는 의견은 무기력하게 빗나갔다.

루이 바둑의 힘은 무엇인가. 일류급이었다지만 세계 정상인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9단 등 이른바 ‘빅3’와 대등한 승부를 펼칠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루이 9단이 자신의 기력(棋力)에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한국바둑을 ‘접목’한 데서 찾고 있다. 루이 9단은 목진석 4단, 김승준 6단, 원성진 2단, 윤현석 5단 등 기라성 같은 한국 바둑의 젊은 고수들이 참여하고 있는 바둑연구모임 ‘소소회’의 멤버다. 자의반타의반으로 유랑생활을 하면서 고수들과의 만남 자체가 불가능했던 루이 9단은 지난해 4월 한국에 정착한 뒤 이 멤버들과 하루에도 몇 차례씩 대국했다.

백성호 9단은 “루이 9단이 예상 밖으로 빨리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승부욕과 이론에 강하기로 소문난 소소회 멤버들과의 다양한 실전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바둑밖에 모르는 루이의 성실성과 바둑인생을 한국무대에서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다는 집념이 국수전 우승의 결실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다. 사실 프로의 세계에서 37세는 전성기가 지난 나이일 수도 있다. 한국기원의 한 관계자는 “루이와 장 부부는 오전 9시면 틀림없이 연구실에 출근하는 시계”라고 말했다.

‘철녀’라는 별명답게 처음부터 끝까지 싸움으로 일관하는 루이의 바둑 스타일도 한국 바둑계에 충격과 놀라움을 주고 있다. 그에게 ‘대마 불사론’은 통하지 않는다. 집요하게 대마를 물고 늘어지는 그의 기풍은 가히 ‘대마 킬러’로 불릴 만하다. 조훈현 9단조차도 국수전 3국이 끝난뒤 “정말 힘이 세다”고 토로했을 정도.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불리는 유 9단은 두터움을 위주로 싸움을 전개하는 스타일. 하지만 유리해지면 재빠르게 싸움을 마무리짓는다. 또 조 9단은 발빠른 행마를 앞세워 수시로 치고 빠지면서 실리는 얻는 ‘아웃복싱’ 스타일이다.

백 9단은 “루이 9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편 대마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면서 “유리해졌다고 해도 싸움을 멈추는 일도 없다”고 말한다.

루이 9단은 이제까지 한국의 빅 3를 추격했다면 앞으로는 국수전 우승으로 쫓기는 양상이 됐다. 전문가들은 국수전 이후 어떤 성적을 내느냐가 루이 9단의 롱런을 가늠할 것이라고 말한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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