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험전형의 취지는 ‘성적 위주의 줄세우기 시대’를 마감하겠다는 것이다. 21세기에 맞는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고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목표도 제시됐다. 대부분 믿어 의심치 않던 이같은 무시험전형 계획에 최근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각 대학들은 다음달 2002학년도 입시의 세부 전형계획을 발표하게 되어 있다. 이를 앞두고 주요 대학들이 98년 발표된 개선안과는 크게 다른 전형계획을 내부적으로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가운데 맨 먼저 서울대가 모집 정원의 80%를 뽑는 고교장 추천제에서 수능점수를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초 개선안은 수능 점수를 발표하지 않고 전체 응시자를 9개 등급으로 나눠 등급만 통보하도록 되어 있었다. 대학측은 이 등급을 입시에서 최저 자격기준으로만 활용하도록 했다. 여기에는 수능 경쟁에 따른 과열과외를 예방한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개선안의 핵심 내용이다. 따라서 서울대의 방침은 개선안을 부정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서울대의 발표가 나오자 등급을 발표하지 않겠다던 방침을 바꿔 수능점수를 함께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혀 사전 조율이 있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는 고교장 추천전형에서 학생들을 선별할만한 뚜렷한 기준이 없어 수능성적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학생부 만해도 입시를 의식한 고교측의 의도적인 ‘성적부풀리기’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대학입시는 대학자율에 맡기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번 문제는 이와는 차원이 좀 다르다. 교육부와 주요 대학들은 그동안 누누이 개선안대로 입시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혀 왔다. 대다수의 수험생들은 이 말을 믿고 입시 준비를 해 왔다. 입시를 2년도 안남긴 상황에서 이를 번복하는 것은 그래서 수험생과의 중대한 약속위반이다. 입시제도는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 ‘불신’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정부 발표를 믿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입시제도의 누적된 관행은 이쯤에서 멈춰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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