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가장 흔한 정신질환이다.
우울증 환자는 온종일 깊은 슬픔 절망감 무력감에 시달리며 밤에 자주 깨어난다. 심한 경우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헛것을 보거나 듣는 환각 증세를 나타낸다. 생의 의욕을 잃고 자살을 감행하는 환자도 더러 있다.
우울증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겹쳐 유발되는 복합 질병이다. 우울증에 관련된 유전인자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부모로부터 우울증에 걸릴 성향을 물려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전적 요인보다는 일상생활에서 누적된 스트레스 따위의 환경적 요인이 우울증의 발병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 같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의외로 많고 그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더욱이 남자보다 여자가 두 배 가량 더 많이 이 병에 걸린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선진국 여성의 약 20%가 우울증 환자라고 밝혔다. 여자가 남자보다 우울증에 잘 걸리는 이유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가령 페미니즘의 시각에서는 여성 억압의 탓으로 돌린다.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또는 성적으로 폭행 당하거나, 인격적으로 학대받기 때문에 여성이 우울증에 빠지게 마련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여성 특유의 생식기관이나 월경을 우울증의 원인으로 꼽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보다 생리적으로 민감하게 환경 요인에 반응하므로 우울증에 잘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을 촉진함으로써 간접적이지만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트레스를 받는 동안 부신(副腎)에서 코티졸이라 불리는 호르몬이 다량 분비된다. 에스트로겐은 코티졸의 분비를 자극한다. 따라서 남자보다 여자에서 스트레스 반응이 뚜렷하고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수십 년에 걸친 연구에서 우울증이 심한 환자는 남녀 모두 코티졸 분비량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에스트로겐이 스트레스 반응에서 코티졸 분비를 촉진시키므로 여자가 남자보다 우울증에 잘 걸리게 작용하는 셈이다.
스트레스 못지 않게 여자를 우울증에 취약하게 만드는 외부 요인은 계절의 변화이다. 계절적 정서 장애(SAD)라 불리는 이른바 겨울 우울증에 여자가 남자보다 3배 가량 많이 걸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낮이 짧고 밤이 긴 겨울철에 많은 사람이 정서 장애를 일으킨다. 이들은 밤이 되면 우울해지고 생각이 뒤죽박죽된다. 성욕은 갑자기 저하되지만 식욕은 왕성해서 체중이 늘어난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서 세상 만사에 무감각해진다. 이러한 겨울 우울증은 짧은 겨울 낮에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해 발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요컨대 여자가 남자보다 빛에 더 민감하므로 발병률이 높은 것이다.
최근에는 겨울 우울증이 낮의 길이뿐만 아니라 계절 특유의 냄새와 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겨울 우울증에 걸린 여자들 중에 남편의 몸 냄새를 맡지 못한 경우가 있었는데, 봄이 되어 우울증이 사라지면서 갑자기 남편 체취를 식별한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겨울은 온갖 냄새를 얼어붙게 하는 황량한 계절이 아니던가.
스트레스, 겨울 낮의 길이 또는 냄새 등 우울증을 유발하는 환경적 요인은 결국 뇌 안에서 변화를 일으킨다. 세로토닌이라 불리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제어하는 체계에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우울증 치료를 위해 개발된 프로작이나 조로프트 같은 항우울제는 세로토닌의 활동을 조절함으로써 뇌에 작용한다.
우울증은 항우울제와 함께 정신요법을 병행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계절적 정서 장애의 경우 환자를 밝은 광선에 노출시킨 상태에서 장미꽃 냄새를 풍기는 향기요법이 권유된다. 이러한 치료법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일 터이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