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당이란 말이 등장한 것은 한말 김옥균(金玉均) 등의 개화당과 민태호(閔台鎬) 등의 사대당이었다. 집권세력이던 사대당은 청나라의 양무(洋務)운동을 받아들이면서 점진적으로 개혁하려 했다. 그러나 체제 전반의 근대적 개혁을 기도했던 개화당이 그에 도전했다. 이 둘은 각기 다른 철학과 노선에 따라 만들어진 정치집단들로 정당의 모습에 더욱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당시는 19세기말로 유럽 정당론의 원조인 흄이 ‘정당에 관한 한 고찰’(1760)을 발표한 지 1세기 이상이 지난 뒤였다.
▷뭐니뭐니 해도 한국 정치사에 조직적인 정당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항일 독립운동기였다. 1926년 3월 중국 지린성(吉林省) 영남반점에서 양기탁(梁起鐸) 등이 고려혁명당을 조직했다. 당원은 1600여명. 이 당의 독립운동 노선과 정치이념을 실천하는 행정기관으로 정의부(正義府)가 만들어졌다. 그보다 조금 늦게 1928년상하이(上海)에서 김구(金九) 조소앙(趙素昻) 등이 임시정부의 여당으로 한국독립당을 결성했다. 이 때 정당 조직의 명분이 ‘당으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의 ‘이당치국(以黨治國)’이었다.
▷우리 선인들은 적어도 주권 회복이나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명분으로 정당을 결성했다. 그것이 다른 나라들에서도 보편적인 정당의 기원은 아니지만 우리의 역사는 그랬다. 총선거를 코앞에 두고 또 신당이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당사자들이야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천 탈락자들을 중심으로 한 선거용 급조정당이 명분에서 밀리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김재홍 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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