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정당결성의 명분

  • 입력 2000년 2월 23일 19시 26분


‘당(黨)’이란 개념으로 맨 처음 쓰여진 저술은 조선조 고종 때 이건창(李建昌)의 ‘당의통략(黨議通略)’이다. 이 책은 선조 때 김효원(金孝元)과 심의겸(沈義謙)간의 정치권력을 둘러싼 갈등으로 시작해서 영조가 탕평책을 쓰는 시기까지 당쟁의 과정을 공정하게 기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관직 천거권을 가진 이조전랑(吏曹銓郞) 임명문제 때문에 시작된 두 사람의 힘겨루기는 동인과 서인의 당파대립으로 이어졌다. 당시 가장 중요한 정치문제인 관직 천거를 놓고 당파가 형성됐으므로 그것이 원초적 정당 형태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 후 당이란 말이 등장한 것은 한말 김옥균(金玉均) 등의 개화당과 민태호(閔台鎬) 등의 사대당이었다. 집권세력이던 사대당은 청나라의 양무(洋務)운동을 받아들이면서 점진적으로 개혁하려 했다. 그러나 체제 전반의 근대적 개혁을 기도했던 개화당이 그에 도전했다. 이 둘은 각기 다른 철학과 노선에 따라 만들어진 정치집단들로 정당의 모습에 더욱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당시는 19세기말로 유럽 정당론의 원조인 흄이 ‘정당에 관한 한 고찰’(1760)을 발표한 지 1세기 이상이 지난 뒤였다.

▷뭐니뭐니 해도 한국 정치사에 조직적인 정당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항일 독립운동기였다. 1926년 3월 중국 지린성(吉林省) 영남반점에서 양기탁(梁起鐸) 등이 고려혁명당을 조직했다. 당원은 1600여명. 이 당의 독립운동 노선과 정치이념을 실천하는 행정기관으로 정의부(正義府)가 만들어졌다. 그보다 조금 늦게 1928년상하이(上海)에서 김구(金九) 조소앙(趙素昻) 등이 임시정부의 여당으로 한국독립당을 결성했다. 이 때 정당 조직의 명분이 ‘당으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의 ‘이당치국(以黨治國)’이었다.

▷우리 선인들은 적어도 주권 회복이나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명분으로 정당을 결성했다. 그것이 다른 나라들에서도 보편적인 정당의 기원은 아니지만 우리의 역사는 그랬다. 총선거를 코앞에 두고 또 신당이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당사자들이야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천 탈락자들을 중심으로 한 선거용 급조정당이 명분에서 밀리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김재홍 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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