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 부인상은 시대적 흐름을 타고 급격히 변화했다.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로서 가장 적극적 역할을 수행했던 대통령 부인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내 엘리너 루스벨트였다. 그녀는 매우 적극적인 사회개혁을 주장했으며 국민의 소리를 가감없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신문에 ‘나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매일 실으며 당시까지 제한적이던 대통령 부인의 활동영역을 전문 영역에까지 광범위하게 넓혔다. 그녀는 대통령 부인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이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했다.
미국은 국무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한 로절린 카터, 마약추방 캠페인을 전개했던 낸시 레이건, 대통령 부인을 공식 기관화한 재클린 케네디, 의료보험개혁위원회를 지휘하고 대통령 집무실 옆에 처음으로 대통령 부인실을 설치하며 ‘공동 대통령’으로 불렸고 뉴욕주 상원의원에 출마한 힐러리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점차 대통령 부인의 위상과 역할이 확대됐다. 92년 대선에서 클린턴 후보가 ‘한 명 값으로 두 명을’이라는 구호를 외칠 정도로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전문직 여성으로서 대통령 부인이 자리매김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프란체스카 여사부터 김영삼 대통령의 손명순 여사까지 현모양처로서 사회봉사 활동만을 열심히 하며 내조자로서 전통적 아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 중 육영수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이 소홀했던 부분을 살피면서 희생적인 사회봉사 활동을 통해 많은 찬사를 받았다. 현재의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역정을 거치면서 대통령의 가장 신뢰할 만한 정치적 동반자로서의 충분한 자격이 있다. 얼마전 모 TV 프로그램에서 우리 국민이 가장 원하는 대통령 부인상은 육영수 여사와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을 합친 모습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 국민은 현모양처의 전형인 ‘수줍은 그림자적 내조자’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정치적 동반자’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 부인들 스스로 그들만의 고유영역을 찾아 새로운 대통령 부인상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대통령 부인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필요하다. 앞으로 대통령 부인은 안방마님으로서 미소와 침묵을 미덕으로 조용히 내조하는 역할이 아닌, 전문성을 갖춘 정치적 동반자로서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제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과 같이 정치과정을 경험하면서 정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충성심이 강한 대통령의 제1참모이다. 아내이자 참모로서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의 성공을 가장 기원하면서 충심으로 대통령을 조언할 수 있다.
이러한 대통령 제1참모로서의 대통령 부인을 남녀차별의 편견에 사로잡혀 활용하지 않는다면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여전히 남녀차별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 부인의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역할은 여성의 여권신장을 위해서도 선행돼야 한다. 새 천년에는 전문성을 기초로 대통령과 함께 국가 비전과 정책 대안을 고민하는 정치적 동반자로서의 새로운 대통령 부인상이 정립돼야 하겠다.
함성득(고려대 교수·대통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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