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백진현/한중漁協 빈틈없이 준비를

  • 입력 2000년 3월 1일 19시 31분


일본과 중국은 1997년 11월 양국이 서명했던 중일어업협정을 서명 2년반 만인 금년 6월 1일까지 발효시키기로 최근 합의했다. 그동안 협정 발효를 지연시킨 핵심쟁점이었던 중일잠정조치수역 이북 수역의 조업문제에 대해 양국은 서로의 입장을 반분(半分)하는 선에서 타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수역은 제주도 남방수역과 중첩 가능성이 있어 그동안 한국 정부도 양국간 교섭을 예의 주시했다. 물론 이번 합의는 중일 양국간 합의로서 원칙적으로 한국을 구속할 수 없지만 정부는 이번 합의가 간접적으로라도 우리 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점검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작년 11월 가서명했던 한중 어업협정의 조속한 발효를 위해 양쯔강 수역 조업문제 등 남은 쟁점의 타결도 서둘러야 한다. 그동안 각각 별도로 진행된 한일, 중일, 한중 어업협정을 조율 조정하는 문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특히 동중국해처럼 한중일 3국의 관할권이 중복되는 수역에서 조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3국간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

지난 수년간 한중일 3국은 과거 40여년 동북아 어업을 규율했던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협상을 벌였다. 97년 한일 양국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도입했고 중국이 이를 뒤따르면서 이러한 협상의 계기가 마련됐다.

그 결과 12해리 영해시대에 체결된 어업협정은 200해리 경제수역시대에 걸맞은 협정으로 대체되지 않을 수 없었고 한중일 3국은 각각 세 쌍의 양자간 어업협상을 진행했다. 작년 초 한일어업협정이 발효돼 새로운 질서의 한 자락을 열었고 이제 중일어업협정과 한중어업협정이 발효되면 동북아의 새로운 어업질서의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하나의 질서가 새로운 질서로 대체되는 과정에는 항상 마찰과 갈등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미 우리는 작년 신한일어업협정의 발효에 따른 심각한 후유증을 겪은 바 있으며 앞으로 체결될 한중어업협정도 철저히 대처하지 않으면 유사한 홍역을 치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정부는 어업질서 변화에 따른 파급효과를 미리 내다보고 충격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질서변화에 따른 진통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반발에 위축돼 시대적 대세인 새 어업질서 구축작업에 뒤져서는 안된다.

현재 진행중인 한중일 3국간 어업질서 재편작업은 향후 동북아 협력의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실 그동안 한중일 3국 관계는 한마디로 무정형(無定型)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어렴풋한 형태나 방향조차 없이 갈등과 협력, 경쟁과 반목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동북아 협력의 필요성이 일부에서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것이 과연 실현가능한지 또 바람직한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없었다. 이런 점에서 동북아의 해양과 어업자원을 공유하는 한중일 3국의 해양질서 창출작업은 지역협력의 장래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동북아 어업은 물론 그 자체로 중요한 경제적 문제이지만 이미 보았듯이 한중일 3국간 영토 및 경계문제, 그리고 국내정치적 역학과 불가분으로 연결된 대단히 민감하고 복잡한 정치 외교적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를 다룸에 있어 한중일 3국이 과연 해양자원의 보존과 최적이용이라는 공동의 이익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지, 또 국내 정치적 압박을 극복하고 영유권 분쟁과 같은 갈등요인을 지혜롭게 피해 3국 협력의 틀을 마련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작년 11월 마닐라 ‘아세안+3국 회담’ 때 개최된 최초의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3국 정상은 동북아 경제협력체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

한중일 3국은 동북아 해양질서 재편작업에서 이러한 구상을 의미있는 장기정책목표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이 과정에 한국 정부의 외교적 비전과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백진현(서울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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