族-무리 족 譜-문서 보 嫡-큰마누라 적▼
우리나라나 중국은 예로부터 血緣意識(혈연의식)이 무척 강했다. 가정을 기초로 그것을 확대한 것이 마을 사회 국가가 되었다. 국가는 거대한 가정의 조합으로 왕은 일국의 군주이자 천하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 血緣意識의 대표적인 것이 門中이다. 일명 宗中(종중)이라고도 하며 같은 조상을 둔 子孫들에 의해 조상숭배를 위해 이뤄진 血緣集團이라 할 수 있다. 後孫의 범위에 따라 同姓同本의 모든 血族이 포함되는 大門中, 中始祖(가문을 크게 일으킨 시조)를 모시는 派門中, 入鄕祖(입향조·마을을 세운 시조)를 모시는 小門中이 있다.
門中은 宗家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그 宗家의 長孫을 宗孫, 門中의 구성원들이 모이는 모임이나 조직을 花樹會(화수회·일명 門會)라고 한다. 門中이 하는 일로는 祭祀를 올린다든지 조상의 유물 유적을 보존하며 親睦을 도모하고 族譜(족보)를 간행하는 것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유교의 예법을 철저하게 지켰던 조선시대에 門中이 크게 성행했으며 宗家의 代가 끊어지는 것은 한 가문의 단절로 여겨 養子를 통해서라도 家系를 이으려 할 만큼 門中을 중시했다.
3000여년 전 中國 周나라는 宗法制度라고 하는 독특한 가족제도를 실시하고 있었다. 王室 이하 大夫에 이르기까지 모든 爵位(작위)의 繼承權(계승권)은 오직 嫡長子(적장자·宗子)한 사람에게만 주어져 그의 권위는 다른 아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다. 이처럼 繼承權을 지닌 嫡長子의 계통을 大宗이라 하고 나머지를 小宗이라고 불렀다. 자연히 大宗의 大宗은 天子가 된다. 우리나라의 門中이나 宗家 宗孫 개념은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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