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이문열/특정高 편중人事 기획 적절

  • 입력 2000년 3월 5일 21시 15분


80년대 내내, 그리고 90년대 중반까지 고위 공직자 임명 때마다 언론이 눈 부라리고 바라보던 게 있다. 다름 아닌 그의 출신 지역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게 슬슬 빠지는가 싶더니 근래, 특히 텔레비전에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졌다.

그런데 2일자 동아일보 종합판을 보니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 듯도 했다. 세간에 떠도는 풍문보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인사에서 호남편중 실상이 구체적인 도표와 수치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질타가 있었고, 더 이상 이 정권의 인사 편중을 과장되기 쉬운 풍문에 맡길 수만은 없어 한 기획이겠지만 동아일보만이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결단으로 보여진다.

내용을 두고 영호남의 정객들이 펼칠 시비는 또 다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실상을 의혹의 여지없이 보여준 것이고, 그 효과는 쓸데없는 상상과 추측의 차단이다.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대중의 근거 없는 추측과 상상이 얼마나 자주 엉뚱한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지던가. 쉽지 않았을 그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

같은 정보라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사회적 파급효과는 판이해진다. 그 중에서도 언론이 범하기 쉬운 실수 중의 하나가 어른과 아이 싸움 붙여놓고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놈한테 점잖은 어른이 욕보는 꼴을 재미있어하며 구경하는 일이다. 꼭 합당한 예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3일자 정치면 이인제 대(對) 김종필 식(式)의 기사가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를 지지하고 말고에 관계없이 김종필씨는 어제 그제까지 공동 여당의 당수로 이인제씨가 경의를 표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공동여당의 국무총리로 행정을 총괄했던 대선배가 된다. 그런 사람을 하루아침에 ‘지는 해’로 격하시킨 말의 야박함도 그렇지만, 스스로를 ‘뜨는 해’로 추켜올리는 기고만장은 아무리 잘 보아주려 해도 ‘버르장머리 없는…’이란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도 그 두 사람을 다루는데 보다 온당한 느낌을 주는 것은 차라리 같은 날짜 손문상 화백의 만평이다. 다같이 볼썽사납게 희화화(戱畵化)시키기는 했지만 “너 고향 가서 여우 떨지 마”란 김종필씨의 일갈은 두 사람의 격을 어느 정도 구분해주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공직자 재테크’에 관한 논평과 해설들이다. 우리는 지난 십여년 동안 사후법(事後法)적인 가치판단에 의해, 더구나 흥분한 여론재판에 따라 유능한 공직자들이 삶기는(팽·烹) 모양을 너무 자주 보아왔다.

논평과 해설이 재테크가 부당함을 지적하고, 그 제도적인 금지를 제의하는 것은 적절하고도 합당한 일이다. 해당 공무원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필요하다면 반성을 촉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마녀사냥을 부추겨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이문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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