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성의 세기'

  • 입력 2000년 3월 7일 20시 06분


8일은 21세기 들어 처음 맞는 세계 여성의 날이다. 지난 세기를 돌아보면 여성의 지위는 100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에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향상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성운동을 통해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면서 거둔 뜻깊은 결실이었다. 새로운 세기는 ‘여성의 세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 지위에 더욱 혁명적인 변화가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올들어 나라 안팎에 여성파워가 거세다. 지난 달 핀란드에서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당선되는 등 지구촌 이곳 저곳에서 여성지도자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우리도 각 분야에서 여성 진출이 눈에 띄게 활발하다. 올 서울대의대 입시에서 여자신입생이 절반을 넘어섰으며 사법고시에 여성합격자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예 중의 일부일 뿐이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7년 미국 뉴욕의 섬유공장 여성노동자들이 벌인 권익옹호 투쟁을 기념하기 위해 이듬해 3월 8일 뉴욕에서 여성들이 벌였던 가두시위에서 유래한다. 이 행사는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로서 남성중심 사회에 맞서 투쟁하는 중요한 구심점이 되어 왔다. 최근 여성파워의 급류 속에서 새 세기의 첫 ‘세계 여성의 날’이 지니는 의미는 더욱 커 보인다.

남녀평등은 다른 어떤 명분을 떠나서도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다. 하지만 겉으로 별 장애물이 없어 보이는 이 과제가 그리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가 펴낸 여성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아직도 여성들이 가정 폭력이나 사회적 경제적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권 선진국인 미국에서조차 여성의 37%가 성적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된 것을 보면 다른 후진국들의 사정은 말할 나위가 없다. 여성들의 노동량은 가사노동 부담에 따라 남성들의 113%에 달하는 반면에 평균 임금은 3분의 2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다. 보다 완벽한 남녀 평등 사회에 도달하려면 인류가 앞으로도 꽤나 긴 여정을 남겨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도 여성 인권에 관한 한 초보단계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여성부 신설이나 비례대표 여성할당제 같은 몇몇 제도의 도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21세기의 덕목으로 여성성이 중시되는 것은 미래사회가 현실적으로 이러한 가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감수성과 섬세함, 유연성 등 여성들이 지닌 강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남녀가 이 같은 각자의 성(性)역할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남녀 평등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풀어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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